유럽 3대 야경으로 꼽히는 천년의 고도, 프라하 #1 < Prah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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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여행 기록

해외 여행 부문 : 유럽 3대 야경으로 꼽히는 천년고도프라하  #1

원문 : 자리의 달콤한 꿈 이야기

글 : 자리 | 이미지 : 중부유럽의 문화수도, 프라하   ( Praha in Czech )





모든 자료는 여행 순으로 기록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블로그 작성 시점에 따라 실질적인 여행기간과 업로드 된 일부 자료사이에 간극이 발생할 수 있으나 블로그에 명시된 시세나 정보는 블로그 공유 시점(2020년 4)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으므로 그 이후 변화에만 주의하시고, 게시된 모든 여행기록은 정보공유와 현지 여행 희망자의 참고를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모든 사진은 클릭하면 확대되며 또 다른 블로그 네이버 블로그와 함께 합니다. 또한 이 블로그는 네이버 웨일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 있어 모바일을 포함한 플랫폼에서는 화면 상태가 고르지 못할 수 있습니다.


게시 글의 사진 이미지는 201508월에 담은 사진을 업로드 한 것임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체코의 첫 번째 여행지였던 동화 속 마을 체스키 크룸로프에서의 반나절을 보내고 중부유럽의 문화수도 프라하에 도착해 23일간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체코를 중부유럽으로 분류한 것은 냉전 종식 이후, 정치적인 의미보다 지리적 관점에서 유럽을 재분류해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며 유럽을 지역별로 나누는 명확한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타인의 견해를 동부나 중부로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World Factbook’에는 체코가 중부유럽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United Nations geoscheme’에는 동유럽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다만 중부유럽이라는 용어는 역사가들에 의해 등장하였으며 냉전시대의 동유럽 국가와 일부 겹침에도 불구하고 일부 주석가들에 의해 중앙유럽으로 분류되곤 하지만 많은 국가들은 여전히 체코를 동유럽국가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프라하 두 번째 장의 바로 가기는 지면 최하단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01. 국 가 정 보


  정식 국명

  체코 공화국   ( Czech Republic )

  수 도

  프라하   ( Prague  /  Praha )

  언 어

  체코어

  면 적

  78,866

  인 구

  약 10,708,981

  GDP

  2,515  

  기 후

  체코는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로 대부분 대서양기후대에 놓여있다. 내륙국가의 지리적 특성상 여름과 겨울의 온도차가 상당히 크다

  종 교

  무교 34.5%, 카톨릭 10.4%, 개신교 1.1%

  통 화

  코루나  ( Koruna, Kč ) , 보조통화 할레르   ( Haléř )

  환 율

  CZK = 48.65 원  ( 2020년 04월 08일 기준 )

  비 자

  무비자 90일 체류가능 | 비자  ( 솅겐 조약국 )

  시 차

  8시간 ←  ( 서머타임 기간 7시간 ← )

  전 압

  220V, 50

  국가 번호

  420 : 프라하  2

  안 전

  절도 및 소지품 날치기 주의




  관련 링크  

■ 체코 관광청

the official travel site - Whether you want to spend your holiday actively in the countryside

   Czech Tourism  

 체코 관광청  공식 블로그

5천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체코관광청의 블로그. 300 건의 게시물이 있습니다. 체코관광청 공식 블로그- 체코 여행, 관광, 축제에 관한 다양한 정보 수록

 『  Czech Tourism  Blog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해외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입니다.

 『  Ministry of Foreign Affairs  #Czech Republic  

 체코 프라하 워킹투어

YOUR SMILE IS OUR JOB 체코 프라하 No.1 

여행 가이드/체코 프라하 워킹투어 체코 프라하, 카를로비 바리, 체스키 크룸로프, 체코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  PRAHA Walking  



  관련 정보  ( 출 처 : 위키백과 )  


체코 공화국   < Česká republika >

중앙유럽에 있는 공화국이다. 북서쪽과 서쪽은 독일, 남쪽은 오스트리아, 남동쪽은 슬로바키아, 북동쪽은 폴란드와 닿아 있다. 수도는 프라하이고, 주요 도시로 브르노, 오스트라바, 즐린, 플젠 등이 있다.

체코는 크게 보헤미아(체히), 모라바, 실레시아(슬레스코) 세 지방으로 나뉜다. 체코는 1993년 체코슬로바키아로부터 분리되었다. 1999312일에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에 가입하였으며 200451일에는 유럽 연합의 정회원국이 되었다. 이 나라의 민족 구성은 대부분이 서슬라브족에 속하는 체코인으로 인구의 90% 정도를 유지한다. 슬로바키아인은 두 번째로 주요한 민족이다.


서안 해양성 기후   < 西岸海洋性氣候 >

쾨펜의 기후 구분에서 온대 기후에 속하는 기후이다. 주로 남북위 40˚~ 60˚사이인 대륙 서안에서 나타나는 기후로, 대체로 여름은 선선하고 겨울은 따뜻하며, 연교차가 작다. 대체로 습윤하여 연중 강우량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기와 건기가 뚜렷하게 발생하지 않는다. 이러한 기후가 발생하는 까닭은 기압의 배치와, 난류가 흐르고, 편서풍이 부는 것 때문이다. 습윤한 기후 때문에 안개가 자주 낀다. 대도시와 문명이 발달하기 좋은 곳으로, 실제로 대규모 공업단지와 대도시가 밀집한 지역이기도 하다.

블라디미르 쾨펜은 서안 해양성 기후를 가장 따뜻한 달이 22˚C 이하이고, 10˚C 이상인 달이 네 달 이상이면, Cfb, 10˚C 이상인 달이 네 달 미만이면 Cfc로 구분하였다. 서안 해양성 기후는 주로 지중해성 기후 북쪽에 잘 나타나며, 유럽을 보면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 (영국, 프랑스, 독일, 노르웨이 등)과 아프리카 일부 지역, 오스트레일리아 일부 지역 및 뉴질랜드, 일본 홋카이도의 도난 지방 및 도호쿠 지방의 일부 지역 등이 이 기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은 한반도 지역에는 북한의 원산시에서 함흥시 사이의 지역에 한하여 서안 해양성 기후를 띄고 있으며, 울릉도와 독도에서도 서안 해양성 기후를 띈다.

일반적으로, 서안 해양성 기후는 침엽수와 활엽수가 섞여 자라는 혼합림이 나타나고, 농작물을 경작하고 가축 사육을 함께하는 혼합 농업 또한 발달한다. 낙농업도 발달하여, 우유로 만든 제품(치즈, 버터, 분유 등)을 얻기도 한다.

, 이러한 기후로 인하여 잔디밭을 이용한 스포츠가 발달하였다.


일광 절약 시간제  < 日光節約時間制  /  Daylight saving time  /  DST  /  서머 타임 ( summer time ) >

하절기에 표준시를 원래 시간보다 한 시간 앞당긴 시간을 쓰는 것을 말한다. , 0시에 일광 절약 시간제를 실시하면 1시로 시간을 조정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 낮 시간과 사람들이 활동하는 낮 시간 사이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사용한다. 여름에는 일조 시간이 길므로 활동을 보다 일찍 시작하여 저녁 때 직장이나 학교에서 이렇게 '절약된 낮 시간'을 더 밝은 상태에서 오후에 활동할 수 있게 하는 효과가 있으며, 또한 직장이나 학교에서의 조명과 연료 등의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대 지역에서는 계절에 따른 일조량의 차이가 크므로 일광 절약 시간제는 보통 온대 지역에서 시행된다.

여러 정부는 일광 절약 시간제를 특히 낮시간의 효율적인 사용을 통한 에너지 절약의 효과를 앞세우며 홍보한다. '깨어 있는 시간'을 조절함으로써 전기 조명의 사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광절약시간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주장이 근거가 없다고 반박한다. 소위 "일광절약" 기간 동안 냉방수요를 증가시켜 전반적으로 에너지를 낭비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일광절약 시간제는 수면시간을 연중 두 차례나 인위적으로 조정하기 때문에, 교통사고 및 사망 증가, 수면의 질 및 건강의 악화, 인지능력 훼손 및 업무생산성 저하 등 인간행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광 절약 시간제는 통상 봄에서 가을까지(3월 중순 ~ 11월 초) 계속되므로 서머 타임의 '서머'(여름)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으나, 영국을 비롯한 유럽 지역에서는 서머 타임이란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솅겐 조약  < Schengen agreement >

유럽 각국이 공통의 출입국 관리 정책을 사용하여 국경 시스템을 최소화해 국가 간의 통행에 제한이 없게 한다는 내용을 담은 조약이다.







 


#02. 여 행 일 지


  여행지

  프라하  ( Praha ) 일대

  분 류

  여행 기록

  기 간

  2015‘ 08. 04 ~ 2015' 08. 06

  컨 셉

  여 행

  경 로

  

  유 형

  수동 운전차량  /  대중교통  /  도보

  촬 영

  SAMSUNG GALAXY NOTE EDGE - N915S

  비 용

  약 750 $ 내외  ( 유럽 여행 총 지출액 - 회비 갹출 )

  여행숙소

  - ( 2박 3일 )

  관광장소

  카렐교  ( Charles Bridge )  /   구시가지 광장 ( Prague Old Town Square )  /   블타바 강  ( Vltava )  / 

  프라하 천문시계 ( Prague astronomical clock )  /  바츨라프 광장 ( Wenceslas Square )  /  존 레논 벽 ( Lennon Wall )  / 

  프라하 성 ( Prague Castle )  /  성 비투스 대성당 ( St. Vitus Cathedral )  /  구왕궁 ( Old Royal Palace )  /  황금 소로 ( Golden Lane )  /

  국립 마리오네트 극장 ( National Marionette Theatre )  /  화약탑 ( Powder Tower )  /  하벨 시장 ( Havel's Market )






 


#03. 여 행 TIP


1). 유레일패스(Eurailpass)를 통하여 열차 뿐 아니라 유레일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여러 제휴사의 페리와 유람선, 호텔과 호스텔 할인, 관광지 입장 및 각종 투어 무료 또는 할인 제공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유럽의 소수 특정 국가만 여행을 계획하는 경우엔 글로벌 패스가 아닌 1개국에서 이동 가능한 원컨트리 패스혹은 2~4개국까지 이용 가능한 셀렉트 패스를 이용하시면 해당 국가를 구석구석 누빌 때 갖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3). 자동차 리스 유로 패스를 이용 시에는 성인 3인 이상일 경우가 유레일 패스에 비해 저렴합니다. 자동차 운행으로 인한 장거리 이동이나 주차에 대한 피로에 비해 근교여행이나 숙소 이용 등에 대한 메리트가 있습니다.


4). 자동차 운행을 위해서는 국제운전면허증을 필히 지참하고 계셔야 하며 교통법규를 사전에 숙지하셔야 범칙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유럽은 자동차보다 보행자와 자전거의 안전을 최우선시하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후진적인 교통습관은 버리고 운행하시기 바랍니다. 경적은 가급적 자제하시고 추월을 위해서는 방향지시등으로 앞 차량에게 차선양보를 유도하세요. 특히나 횡단보도 교차로에서는 멈추거나 서행하는 것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5). 주차는 반드시 주차구역에 하셔야하고 네비게이션은 한국어 지원여부 확인과 여행지의 MAP을 반드시 사전에 업데이트 받아 여행 도중 헤매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준비를 해 두셔야 합니다.


6). 여행을 준비하는 분들 중 장기운행의 피로와 자유 여행 또는 개인이나 소수그룹으로 유럽여행이 부담되는 분들은 인솔자와 현지 기사분이 함께하는 유럽 세미패키지 여행 카페를 검색하시어 일정이 겹치는 분들과 함께 여행 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7). 한 장의 사진, 한 곡의 음악, 지인들과의 수다 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자신의 생명입니다. 유럽에서는 트램 (노면전차) 노선에 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8). 유럽여행정보인증제도(ETIAS)2021년부터 도입될 예정입니다. 대한민국을 포함한 비자가 면제되는 국적자가 솅겐 협정국(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내 26개국에서 비자를 취득하지 않고 방문하는 경우, ETIAS 전자인증 시스템에 사전 등록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관련 링크  

■ 유레일

유레일패스 하나면 유럽여행이 더욱 즐거워진다. 31개국 여행이 가능한 글로벌 패스부터 원컨트리 패스까지!

   Eurail  

■ 유럽 여행 정보 인증제도

유럽 여행 정보 인증제도 소개 가맹국, 비자 등 안내.

 『  ETIAS  



  관련 정보  ( 출 처 : 위키백과 )  


유레일 그룹  < Eurail Group G. I. E >

유럽의 철도 관련 회사이다. 네덜란드계 회사로 룩셈부르크에 본사가 있다. 주 상품은 유레일패스와 인터레일이 있다. 유럽 배낭 여행객들에게 친숙한 회사 중 하나이다. 유럽의 가맹국가에서의 일반 열차 및 통근 열차를 일정 기간 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열차의 경우, 일정 금액의 예약료를 지불해야 한다.


노면전차  시가전차  트램   < 路面電車  市街電車  /  tram >

교통수단의 하나로, 주로 도로상에 부설된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전동차를 일컫는다.


유럽 여행 정보 인증제도  < EU Travel Information & Authorisation System  /  ETIAS >

유럽 여행 정보 인증제도(ETIAS)라는 것은 비자가 면제되어있는 대한민국이나 미국 등의 국민이, 솅겐 협정국인 유럽의 일부 나라에 (독일, 이태리, 프랑스 등 26개국)에 비자를 취득하지 않고 방문하기 위해 필요한 유럽여행 정보인증제도 입니다.

비자를 보유하지 않은 대상국적자는 사전에 이 ETIAS 전자인증시스템에 신청을 하는 것을 필수로 합니다. 등록된 여권정보는 유로폴(유럽경찰기관)등에 조회되어 조사가 이루어집니다. 솅겐 비자를 이미 보유하고 있는 경우는 비자만으로도 입국이 가능하므로 ETIAS의 신청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전자인증시스템은 미국이나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이미 도입되어 있습니다.




 



 


#04. 중부유럽의 중심지로



 



블타바(Vltava) 강이 가로질러 흐르는 체히 지방의 중심부에 자리한 프라하(Praha)는 체코의 수도로 인구는 약 132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며 도시 전체는 여름에는 온화하고 겨울에는 쌀쌀한 온대기후에 속합니다. 한 때는 영국의 런던, 프랑스의 파리, 터키의 이스탄불, 이탈리아의 로마에 이어 유럽에서 5번째로 방문객이 많은 관광도시였으나 관광경쟁력이 하락하면서 순위권과의 격차가 벌어지고는 있지만 중부유럽에서는 정치, 문화, 경제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해낸 도시 중 하나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체스키 크룸로프(Cesky Krumlov)에서 2시간을 달려 프라하에 도착했지만 예약해둔 숙소가 아닌 유명 한식집을 먼저 찾았습니다. 한식을 맛본지 일주일을 채 채우지도 못했는데 한식에 대한 그리움을 억누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체코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여행자보험 가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임으로 여권뿐 아니라 여행자보험 영문가입증명서를 반드시 소지하고 있어야 하며 201611월에 EU의 안전보장을 강화하는 일환으로 유럽 여행 정보 인증제도(ETIAS)’의 도입이 결정되면서 2021년부터는 솅겐 비자를 발급받거나 ETIAS에 반드시 등록되어야 유럽 여행이 가능하니 내년에 유럽을 여행할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사전에 온라인으로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관련 정보  ( 출 처 : 위키백과 )  


보헤미아   체히   < Bohemia  /  Čechy >

현재 체코 공화국을 구성하고 있는 세 지방 중의 하나이다. 이것은 역사적인 구분이며 현대적인 행정지역 구분과는 차이가 있다. 체코의 서부와 중부 지역에 해당하며 면적은 52,750 평방킬로미터, 인구는 약 625만이다. 체코 공화국을 구성하는 또 다른 지방은 모라바와 슬레스코이다. 체히는 처음에는 체코 왕국의 정치적 중심이었고 점차 여기에 모라바, 슬레스코, 루사티아가 추가되었다.

이 지방의 명칭은 서슬라브 계통의 부족 명칭인 '체시'(Češi)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체코 사람을 남성은 체흐(체코어: Čech), 여성은 체슈카(체코어: Češka)라고 하며 복수는 체시(체코어: Češi)가 된다. 이 표현은 현재 체코 공화국의 전체 주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체히 지방의 주민을 가리키는 말이다. 라틴어로는 이 지역을 보헤미아(Bohemia)라고 불렀다. 이것은 기원전 4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까지 이 지역에 거주한 선주민인 보이오하이뭄 (Boiohaemum)이라는 켈트 계통의 부족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블타바 강  몰다우 강  < Vltava  /  Moldau >

체코에서 가장 긴 강으로 그 길이는 430 킬로미터에 이른다. 슈마바 산맥에서 발원하여 체스키크룸로프, 체스케부데요비체, 프라하를 거쳐 몔니크에서 엘베강과 합류한다. 블타바 강으로 흘러드는 지류에는 말셰강, 루주니체강, 오타바강, 사자바강, 베로운카강 등이 있다. 이들 지류와 블타바강은 엘베강과 함께 체히의 남쪽 절반을 뒤덮고 있다. 이로 인해 블타바 강은 전통적으로 체히 전체의 배수 시스템을 형성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05. 카렐교  ( Charles Bridge )


05 - 1. 기 본 정 보               _ 출 처 : Sygic


  명 칭

  Karlův most

  완공(설립) 년도

  1402

  주 소 (위치)

  Karlův most, Praha 11800, Czech Republic

  유 형 (분류)

  다리  /  교량

  구역면적

  길이  621 m  | 너비  약 10 m

  입장시간

  11~ 2AM 10:00 ~ PM 06:00  /  3, 10AM 10:00 ~ PM 08:00  /  4~ 9AM 10:00 ~ PM 10:00

  ( The Lesser Town Bridge Tower  /  Old Town Bridge Tower 동일 )

  시설물 이용시간

  2 시간

  입장료

  The Lesser Town Bridge Tower  /  Old Town Bridge Tower Adults : Kč 100  ( 타워의 매표소 )

  휴관일

  -

  이용문의

  +420 257 532 626



  관련 링크  

■ 프라하 공식 여행 포털 사이트

프라하 Language cz E-shopPrague.eu 공식 관광 포털

   Karlův most #Prague.eu  

■ Home page - The City of Prague Museum

The city of Prague Museum presentation.

 『  Prague Towers  

■ Kostel sv. Mikuláše

프라하 소도시의 성 미쿨라셰 교회가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프라하에서 가장 유명한 바로크 양식의 교회 인 미쿨라셰는 전 예수회와 함께 서 있습니다.

 『  St Nicholas Church in the Lesser Town of Prague  

■ 세인트 살바토르 성당

The Roman-Catholic Academic Parish of Prague

 『  Church of St. Salvator  




05 - 2. 교 통 정 보               _ 출 처 : Google 지도



  현지 이동

  도보

  총 거 

  800 m

  예상 소요시간

  약 9 분

  예상 통행료

  -

  예상 주유비

  -

  경 로

  말라스트라나 자치구   ( Mala Strana Borough )  ▶  카렐교  ( Charles Bridge )




05 - 3. 카렐교  ( Charles Bridge )





 

포만감을 느끼며 카렐교를 따라 구 시가지와 연결되어 있는 말라스트라나 자치구(Malá Strana Borough)’ 어딘가에 예약했었던 숙소에서 짐을 풀고 프라하의 야경을 보기위해 모스테츠카 거리(Mostecká)’를 따라 카렐교로 이동합니다. 이동 중에 처음 눈에 띈 건축물은 성 니콜라스(Saint Nicholas)’에 헌정된 프라하의 두 교회 중 하나인 성 미쿨라셰 성당의 종탑(Svatomikulášská městská zvonice)’이었습니다. 18세기에 건축된 이 교회는 독일의 저명한 건축가인 크리스토프 디엔첸호퍼(Christoph Dientzenhofer, 1655~1722)’와 그의 아들 킬리안 이그나츠(Kilian Ignaz, 1689~1751)’에 의해 디자인되었으며 프라하에서는 가장 가치 있는 바로크양식의 건축물로 간주된다고 합니다. 내부는 화려한 금박과 섬세한 대리석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성 니콜라스의 승천'을 묘사한 천장의 프레스코 화와 악기를 연주하는 황금 천사들로 장식된 오르간을 1787년에 모차르트가 연주하기도 했다고 해서 주목받는 곳입니다.



 



 



저 멀리 다양한 양식의 스타일이 혼재된 말라스트라나 교탑(Malostranské mostecké věže)’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블타바 강둑에 위치한 고딕 양식의 게이트를 통해 연결되어 있는 이 교탑은 레서 타운(Lesser Town)’ 입구이기도하기 때문에 ‘Lesser Town Bridge Tower’라고 불립니다. 대중이 접근할 수 없는 ‘Judith's Tower’라고 불리는 작은 탑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12세기에 건립되어 1591년 현재의 르네상스 스타일로 개축되었으며 창고 및 소방타워로 사용된 큰 탑은 1464년 축조된 페테르 파를레르시(Petr Parléř, 1333~1399)’의 후기 고딕 건축물로 구도시 교탑과 연계되어 축조되었습니다. 높이는 43.5m이며 입장료를 지불하고 전망대에 올라 카렐교 주변의 풍경을 담을 수 있습니다.


구시가와 프라하 성을 연결해 주는 카렐교는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자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중 하나로 1342년 홍수로 유실된 유디틴 다리가 있던 자리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프라하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카를 4(Charles IV)’의 통치아래 1357년에 착공되어 성 비투스 성당을 지은 페테르 파를레르시에 의해 바츨라프 4(Wenceslaus IV)’ 때인 1402년에 완공되었으며 돌다리 또는 프라하 다리로 불리다 1870년 카렐교로 명명되었습니다.

카렐교는 16개의 아치가 떠받치고 있으며 다리 양 끝에는 경비와 통행료 징수를 위해 구도시 교탑과 앞서 언급한 말라스트라나 교탑이 세워졌지만 현재는 전망대로 사용됩니다. 다리 위의 상판엔 수난의 예수 십자가상을 비롯해 1683년부터 1928년까지 제작된 추앙받는 30인의 성인(聖人) 석상들의 모조품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중 얀 네포무츠키 신부(Jan Nepomucký)’의 조각상이 가장 유명합니다.




 


 





카렐교는 얀 네포무츠키 신부가 대주교와 대립하던 바츨라프 4세에 의해 처형당한 장소로서 관광객들이 그가 떨어진 장소에 있는 그의 조각상을 만지며 소원을 비는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1459년에 오스트리아의 역사가, 교수, 정치가였던 토마스 에벤도르퍼(Thomas Ebendorfer, 1388~1464)’가 작성한 로마 순교록(Chronica regum Romanorum)에 의하면 바츨라프 4세는 그의 두 번째 부인인 소피아((Sophia, 1376~1425)’ 왕비의 부정을 의심하여 왕비의 고해신부인 얀 네포무츠키 신부를 불러 고해내용을 다그쳤으나 신부는 왕의 요구에 성스러운 고해의 비밀을 누설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엄히 금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처럼 명하신 것을 순종치 못하는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라며 단호히 거절하자 이에 격노한 왕은 즉시 병사들에게 명하여 갖가지 고문을 가하게 하였지만 그럼에도 신부가 끝내 누설하기를 거부하자, 결국 그의 두 손을 뒤로 결박시키고 몸을 둥그렇게 잡아매어 카렐교 위에서 강물에 던지게 함으로써 물속에 생매장했고 성해(聖骸)417일 멀지 않은 곳에서 발견되어, 체코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프라하의 성 비투스 대성당에 안치되었다 합니다. 이와는 달리 왕은 본인에게 비밀 누설이 어렵다면 다른 생명에게 말해보라 타일렀고, 신부는 왕의 곁에 있던 개에게 속닥이자 그 모습을 본 왕은 격노하여 그 즉시 병사들로 하여금 그를 체포하게 하여 고문하고 카렐교에서 강에 거꾸로 던졌으나 한 달 뒤에 부패하지 않은 채로 떠올랐다는 야사가 전해져 프라하 곳곳에서 이에 관한 그림과 글을 쉽게 발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 요한 네포무크를 나타내는 상징물은 소백의, 영대, 십자고상, 종려나무 잎이고 때론 비밀을 지키는 의미로 왼손으로 입을 막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며 다섯 개의 별로 장식된 그의 후광은 그가 죽고 난 뒤 다섯 개의 별과 같은 광채가 떠올라 사람들이 시신을 찾을 수 있었다는 전설에서 기인하기도 하고 '나는 침묵했다'를 의미하는 라틴어 ‘tacui’5개의 문자에서 비롯된다고도 합니다. 성 요한 네포무크가 떨어진 난간에는 작은 청동 십자가 5개가 있는데 십자가에 손을 내밀어 5개의 별 중 하나를 만지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와 그의 순교 장면이 묘사된 부조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전설 때문에 관광객들의 손길로 변색이 진행 중이며 그의 성상 아래 성인의 발자취를 새긴 2개의 부조도 같은 운명에 처해있는데 왼편에는 네포무크에게 고해하는 왕비 뒤로 바츨라프 4세와 그의 개가 조각되어 있고, 오른편에는 거꾸로 매달려 강에 떨어지려 하는 네포무크와 그를 지켜보라 강요받으면서도 고개를 돌리고 마는 왕비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대체로 강아지는 배우자가 자신에게 충성하길 바라는 소원을, 왕비는 프라하로 돌아오겠다는 소원을 그리고 떨어지는 신부는 일반적인 소원을 빌기 위해 대기열이 발생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소원을 이루어주는 촉매나 소원을 비는 방법이 제각각이라서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본인의 소원 하나만 빌고 다음 대기자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도리일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붐비는 관광객들 틈에서 음악과 예술적인 퍼포먼스 그리고 아름다운 프라하 전경을 감상하며 카렐교의 끝자락에 도달하면 1357년 건축을 시작해 1380년 이전에 완공된 구도시 교탑(Staroměstská mostecká věž)’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역시 건축가 페테르 파를레르시가 디자인한 고딕 양식의 기념물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으며 카렐교 주변의 풍광을 담기 위한 가장 매력적인 전망대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뒤편의 크르지조브니츠케 광장(Křižovnické náměstí)’ 주변에는 체코의 정신적 지주라 불리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며 보헤미아 왕국의 국왕이었던 카를 4세의 동상과 다양한 성도들과 네 명의 전도자들의 조각품이 절묘하게 장식된 세인트 살바토르 성당(Kostel Nejsvětějšího Salvátora)’도 보입니다.




 


 



멋진 야경을 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야경을 촬영하는 기술이 부족해 노이즈의 희생양이 된 많은 분량의 이미지를 삭제할 수밖에 없었고 다음날 프라하 프리투어(Free Tour)에 참가해 투어 경로에 포함된 명소에 대한 재촬영 분을 추가하였기 때문에 사진이 뒤섞여 있습니다. 프리투어 참가 동기는 프라하에 대한 도시를 더 알기 위함이었으며 어떠한 쇼핑이나 옵션도 없이 본인이 만족한 만큼만 참가비를 지불하면 되는 조건이 마음에 들어서 인데 지금은 유로브릿지투어로 이름과 정책이 변경되어 투어방식과 인원, 참가비가 조정된 것 같습니다. 한편 단기적으로 프라하를 관광하시는 분들은 패스가 아닌 1회 또는 24시간 교통권을 구매하여 거리에 따라 관광장소를 물색하고 집중하는 전략으로 경비지출을 줄여주는 게 현명한 판단입니다. 첨부된 사진 중 요리 관련 이미지는 안내자분이 추천한 양식당에서 주문한 요리를 담은 것입니다.




  관련 자료  ( 출 처 : 위키백과 )  


성 니콜라우스  < Saint Nicholas of Myra  /  Nicholas of Bari  |  270315~ 343126>

3세기~4세기 동로마 제국에서 활동하였던 기독교의 성직자로, 산타클로스의 유래가 된 인물이다. 니콜라오, 니콜라스, 니콜라라고도 한다. 성인으로 시성되었으며, 축일은 126일이다. 상징물은 황금이 든 세 개의 자루이며, 어린이·죄수·선원·그리스·벨기에·불가리아·시칠리아·세르비아·몬테네그로·마케도니아 공화국·슬로바키아·그루지야·로렌·러시아·대한 성공회의 수호성인이다.

대한민국의 서울에는 그를 수호성인으로 하는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과 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이 세워졌다.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  < Romanesque style >

9세기 후반에 일어나 12세기에 고딕 양식으로 발전한 유럽의 건축을 설명하는 용어이다. 잉글랜드의 로마네스크 건축은 노르만 건축이라고도 불린다.

로마네스크 건축은 그 당시의 잦은 전쟁으로 인한 석재구조를 사용함으로 육중한 특질, 두꺼운 벽, 둥근 아치, 튼튼한 기둥, 그로인 볼트, 큰 탑과 장식적인 아케이드(늘어선 기둥 아래의 공간)로 잘 알려져 있다. 모든 건물은 명확히 정의된 형태를 가지고 상당수가 규칙적이고 대칭적인 평면을 가진다. 그래서 전체적인 외관은 그 뒤를 잇는 고딕 건축에 비교하면 단조로워 보인다. 이 양식은 지역적 특징과 다른 재료들에도 불구하고, 유럽 전역에 잘 알려져 있다.

고딕양식은 중세의 대표적인 양식이라서 종교적인 성향이 강한데 로마네스크는 그런 경향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양식이라서 인간과 이성, 자연의 고대를 지나 신비의 세계, 신앙의 세계를 드러내고자 하는 특색을 가진다.


르네상스 건축  < Renaissance architecture >

유일하게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1420년대에 시작하여 17세기 초까지 계속된 건축 양식을 가리킨다. 인체 비례와 음악 조화를 우주의 기본 원리로 하고, 로마 건축의 구성을 고전주의 건축으로 이론을 형성했다. 르네상스 건축으로 시작되는 고전주의 건축의 계보는 이후 바로크 건축 · 신고전주의 건축을 통해 계승되어 서구 건축의 주류였지만, 19세기의 역사주의로 인해 상대화하고 결국 해체했다. 르네상스 건축은 본질적인 의미에서는 15 ~ 16세기 이탈리아의 일부 도시에만 성립했다고 할 수 있지만,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서유럽 국가의 건설 활동에도 영향을 주었다. 당초 이들 국가에서는 주로 르네상스 건축의 표층적인 디자인이 도입되었기 때문에 국가별 기호가 나타나고 있으며, 각각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고딕 건축 양식  < Gothic architecture >

중세 시대 말 유럽에서 번성한 중세 건축 양식의 하나이다. 로마네스크 건축 이후와 르네상스 건축 이전에 있었다.

12세기에 처음으로 프랑스에서, 그리고 16세기로 접어들면서, 고딕 건축은 양식에 있어서 모욕이라고 여겨지는 르네상스의 후반부 동안 고딕이라는 낱말이 처음 등장하면서, "프랑스 양식" 작품으로 그 기간 동안 알려져 있었다. 이의 특징은 첨두아치, 리브 볼트, 그리고 플라잉 버트레스를 포함하고 있다.

고딕 건축은 유럽의 지역 교회들과 대수도원, 그리고 수많은 대성당의 건축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많은 성, 궁전, 마을 회관, 협회, 종합대학, 그리고 주택까지 이러한 건축 양식이 쓰인다.

큰 교회와 성당, 그리고 고딕 양식이 가장 강력하게 표현된 수많은 시민 건물들에서 찾을 수 있는데, 감정에 호소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수많은 교회 건물들은 이때부터 남아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작은 것도 자주 건축학적으로 구별되는 구조물들이다. 반면, 많은 큰 교회들은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의 작품으로 여겨지며 세계 유산 지역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다. 이러한 까닭에 고딕 건축의 연구는 크게 보면 성당과 교회의 연구이다.

고딕 건축의 유물인 하늘로 솟구친 첨탑과 스테인드글라스‘, 성서를 옮겨 놓은 듯한 조각들, 성경 필사본, 섬세한 표현의 공예품 등은 모두 중세인들의 신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나타낸 것 이라고 해석한다.

고딕 복고 양식이 영국에서 18세기 말에 시작되어 19세기를 걸쳐 유럽에 퍼져 20세기에 교회와 종합대학 구조물로까지 이어졌다.


네포무크의 성 요한  /   성 요한 네포무크   /   얀 네포무츠키  < Sanctus Ioannes Nepomucenus  |  1345년경 ~ 1393320>

체코의 국민적인 성인으로서 보헤미아 국왕이자 로마 왕이었던 바츨라프 4세에 의해 블타바 강에 내던져져 익사를 당하였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성 요한은 보헤미아 왕비의 고해신부였는데, 왕비에 대한 고해성사의 내용을 밝히라는 왕의 요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순교를 당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네포무크의 요한은 고해성사의 비밀을 준수하기 위하여 목숨까지 버린 최초의 순교자이자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방을 받은 사람들의 수호성인이 되었으며, 또한 강물에 빠져 익사하였기 때문에 홍수 피해자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로마 순교록   < Martyrologium Romanum >

기독교 전례서의 하나로, 주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해마다 지내는 성인들의 축제일을 제시한 전례력의 근거를 이루는 책이다. 첫 번째 공식 출판본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는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1586년에 승인한 것이다.


소백의  < 小白衣  /  rochetum >

일반적으로 로마 가톨릭교회 또는 성공회의 주교들이 가대복을 입을 때 착용하는 기독교의 전례복이다. 동방 교회에는 전래하지 않았다. 소백의는 폭이 좁은 소맷자락을 제외하고는 중백의와 유사하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소백의는 "아마포나 비슷한 천"으로 만들고,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며 때때로 소매와 옷단은 레이스로 만든다. 성공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소백의는 수단의 가장자리까지 내려오며 소맷자락은 손목으로 모인다.


영대  < 領帶  /  στολή  /  Stola >

기독교 성직자들이 예식을 수행할 때 입는 제복 중의 하나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루터교, 장로교, 감리교, 성공회 등)의 성직자들이 예배 또는 미사나 성례 또는 성사 집례 할 때 입는다.


십자고상  < 十字苦像  /  Crucifix >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모습을 표현한 기독교의 조형물을 말한다.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 옥스퍼드 운동이후의 성공회에서는 교회의 제대 뒤에 십자고상이 놓여 있으며, 성공회 이외의 개신교에서는 루터교가 유일하게 신앙전통에 따라 십자고상을 사용하고 있다.


종려과  < 椶櫚科  /  Arecaceae >

종려목의 과이다. 야자과(椰子科)로도 알려져 있다. 종려목에 속하는 2개 과 중의 하나이다.

전 세계의 열대에 분포하며, 270속의 2,400여 종 가량이 알려져 있다. 기원이 오래된 식물로서 백악기부터 화석이 나온다. 11종인 식물이 60개 이상이나 되며, 대부분의 종은 그 분포 지역이 매우 좁다. 한편, 고유종이 많은 지역은 카리브해 제도 마다가스카르 섬과 폴리네시아 부근인데, 인간에 의해 생활 지역이 파괴되어 전멸되어버린 예도 많이 있다.

이 과의 특징은 일반적인 목본 식물과 달리, 부름켜로 2차 비대 생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줄기 꼭대기의 생장점 바로 아랫부분에서 세포가 왕성하게 증식하여, 그 결과 줄기 속에 여러 개의 산재된 관다발이 생기고, 그것을 중심으로 목질화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이런 후에는 주로 키만 커질 뿐 줄기는 더 이상 굵어지지 않는다. 또한, 줄기는 가지로 나뉘어 있지 않다. 잎은 줄기 꼭대기에 모여 나며, 깃꼴 겹잎 또는 주맥이 모여 부채꼴을 이루는데, 이때 깃꼴조각의 밑 부분은 서로 합쳐져 있는 경우가 많다. 30-40년 정도 자란 뒤에야 비로소 잎겨드랑이에 거대한 꽃차례가 달리며, 열매를 맺는 것과 동시에 전체의 생장을 멈추게 된다.

한편, 줄기에는 영양 물질이 저장되어 있어서 꽃이 필 때에 그것을 꽃으로 보낸다. 꽃차례는 여러 갈래로 나뉘며, 각 갈래는 육수꽃차례가 된다. 한편, 전체의 밑 부분과 각 가지의 밑 부분에는 각각 불염포가 있다. 꽃은 기본적으로 6개의 꽃덮이 조각과 6개의 수술, 3개의 심피로 이루어진 씨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러 형태로 특수화되어 있어서 꽃덮이가 통 모양을 이루거나 수술이 기둥 모양으로 합쳐지는 경우도 있다. 꽃은 대부분 단성화가 많다. 씨방은 완전한 이생 심피로부터 3개의 방을 가진 합생 심피, 또는 1개의 방과 1개의 밑씨를 가진 합생 심피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가 있다. 열매는 견과 또는 액과로, 과피는 보통 질이 다른 3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어, 야자나무에서는 외과피는 육질, 중과피는 섬유질, 내과피는 딱딱한 껍질이 된다.

한편, 씨에는 배젖이 많으며, 보통 지방과 단백질을 많이 함유하지만 때로는 다당류를 함유하는 것도 있다. 대부분 풍매화인데 종에 따라서는 충매화인 것도 있다.







 


#06. 구시가지 광장  ( Old Town Square )


06 - 1. 기 본 정 보               _ 출 처 : Sygic


  명 칭

  Staroměstské náměstí

  완공(설립) 년도

  -

  주 소 (위치)

  14 Staroměstské náměstí, Praha 11000, Czech Republic

  유 형 (분류)

  대광장

  구역면적

  -

  입장시간

  구시청사 탑 전망대  -  매주 화요일 ~ 일요일   AM 09:00 ~ PM 22:00  ( 월요일 AM 11:00 ~ PM 22:00 )

  역사를 간직한 청사 내부  -  매주 화요일 ~ 일요일   AM 09:00 ~ PM 19:00  ( 월요일 AM 11:00 ~ PM 19:00 )

  틴 성모 마리아 교회  -  매주 화요일 ~ 토요일  AM 10:00 ~ PM 01:00  /  PM 03:00 ~ PM 05:00

  ( 일요일 AM 10:00 ~ AM 12:00 )

  석종의 집  -  매주 화요일 ~ 일요일  AM 10:00 ~ PM20:00

  프라하 국립미술관 ( 골츠킨스키 궁전 )  -  매주 월요일 ~ 일요일   AM 10:00 ~ PM 06:00  ( 수요일 AM 10:00 ~ PM 08:00

  성 미쿨라셰 교회  -  매주 월요일 ~ 토요일   AM 10:00 ~ PM 16:00  ( 일요일 AM 12:00 ~ PM 16:00 )

  시설물 이용시간

  2 시간

  입장료

  구시청사 내부 및 전망대  –  Adults  :  Kč 250 ( 구 시청사 매표소 )  /  모바일 티켓 Kč 210

  석종의 집  –  Adults  :  Kč 120

  프라하 국립미술관   ( 골츠킨스키 궁전 )  –  Adults  :  Kč 300

  휴관일

  틴 성모 마리아 교회  -  매주 월요일

  석종의 집  -  매주 월요일

  이용문의

  +420 221 714 444



  관련 링크  

■ 프라하 공식 여행 포털 사이트

프라하 Language cz E-shopPrague.eu 공식 관광 포털

   Staroměstské náměstí #Prague.eu  

■ 구 시청 모바일 티켓

부가세 포함 성인 가격 (0 %) 210 Kč-0 항목 0 부가세 포함 가격 0 Kč

   Old Town Hall Mobile ticket  

■ 틴 성모 마리아 교회

Římskokatolická farnost u kostela Matky Boží před Týnem.

 『  Chrám Matky Boží před Týnem  

■ 석종의 집

가장 최근의 건축 및 역사 연구에 따르면 스톤 벨 하우스의 시작은 거대한 탑 뒤에 직사각형 건물이 세워진 

13 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  Galerie hlavního města Prahy #Stone Bell House  

■ 프라하 국립미술관  ( 골츠킨스키 궁전 )

Kinsky Palace 영업 시간 월요일-일요일 : 오전 10-오후 6, 수요일 : 오전 10-오후 8

 『  Národní galerie Praha #Palác Kinských  

■ 성 미쿨라셰 교회

니콜라스 교구 사무소. Staroměstské náměstí 1101. Prague 1-Old Town, 110 00. 

Tel .: +420224190990 gsm : +420602958927

 『  kostel sv. Mikuláše  




06 - 2. 교 통 정 보               _ 출 처 : Google 지도



  현지 이동

  도보

  총 거 

  650 m

  예상 소요시간

  약 8 분

  예상 통행료

  -

  예상 주유비

  -

  경 로

  카렐교  ( Charles Bridge )  ▶  구시가지 광장   ( Old Town Square )




06 - 3. 구시가지 광장  ( Old Town Square )



 


 


 


 



구시가지 지역을 의미하는 스타레메스토(Staré Město)’를 향해 카를로바 거리(Karlova)’를 걷기 시작하다보면 어느새 교역을 중심으로 12세기에 형성된 구시가지 광장(Staroměstské náměstí)’을 만나게 됩니다. 수많은 역사적 사건의 증인이기도한 이 광장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역사 지구로 문화적 가치가 높아 프라하 관광의 중심이라 할 수 있으며 오랜 역사를 자랑하듯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등 시대별 건축 양식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건축물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광장의 낮은 분주히 오고가는 발걸음으로 소란스럽고 밤이 되면 바닥에 둘러앉아 더위를 식히며 차가운 맥주를 들이키는 관광객들로 온종일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주변의 건물들 중에서도 천문시계가 있는 구 시청사는 최고의 관광명소로 꼽힙니다. ‘구 시청사(Staroměstská radnice)’1338년 건축된 전형적인 고딕양식의 건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천문시계가 있는 높이 70m의 탑을 제외한 건물의 상당부분이 파손되어 그 후 복원과 증축을 통해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관광안내소로 이용되고 있으며 입장료를 지불하면 청사 내부의 역사박물관, 천문시계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퇴창 구조의 예배당, 집무실, 구시가의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를 둘러볼 수 있고 모바일티켓 구매 시 할인된 가격에 입장이 가능하므로 자세한 사항은 위의 기본정보 및 관련링크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매시 정각이 가까워지면 프라하의 명물인 천문시계(Staroměstský orloj)’의 퍼포먼스를 보기위해 제법 많은 인파가 몰리는데 천동설의 원리에 따라 시간, 해와 달의 위치를 비롯한 다양한 천문학적 정보들을 표시하는 위쪽의 칼렌다륨과 한해 열두 달의 농경생활을 묘사하는 요셉 마네스(1865)’황도대가 그려진 날짜판인 아래쪽의 플라네타륨 이렇게 상하 2개의 큰 원형으로 이루어진 천문시계는 체코 고딕의 과학과 기술력의 집약체라고 평가받을 만큼 정교하고 화려하며 1410년에 만들어진, 세계에서 3번째로 오래된 천문 시계이기도 합니다. 이 시계와 관련하여 시계장인 하누쉬(Hanuš)’가 이 시계를 제작했고 그가 이와 같은 위대한 시계를 다시는 제작할 수 없도록 프라하 시 측에서 그의 눈을 멀게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계를 지키다 쓸쓸히 병사했다거나 시계를 망가뜨리고 도주했다는 설을 들어보셨겠지만 1960년대에 들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으며 하누쉬는 그저 시계를 수리하고 더욱 개량한 인물 중 하나일 뿐,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얀 쉰델(Jan Šindel)’과 카단(Kadaně)의 시계장인 미쿨라시(Mikuláš, 1350~1419)’의 협업에 의해 제작되었습니다.

정시가 되면 칼렌다륨 오른쪽의 죽음의 신을 형상화한 해골모형이 줄을 당겨 종을 울리며 왼손의 모래시계를 뒤집으면 위쪽 2개의 창에서는 12사도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해골 주변의 모형들이 이를 반기듯 미세한 움직임을 보입니다. 사도들의 행렬을 끝으로 창 위쪽의 황금색 닭이 울고 시간을 알리는 벨이 울리면 모든 퍼포먼스가 마무리되기 때문에 전동장치에 의해 신기한 장면이 연출되는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합니다.




 



광장 한쪽에는 부패한 가톨릭과 교황청에 반기를 들고 청빈한 교회를 주창했던 신학자이며 프라하 대학의 교수기이도 했던 얀 후스의 기념비(Pomník mistra Jana Husa)’가 있습니다. 그는 그저 이론만이 아닌 대중 앞에 자신의 주장을 설파하며 교황청의 적을 자처했고 결국, 141576일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지금의 기념비는 얀 후스의 사거(死去) 500주년을 맞은 1915년에 체코의 조각가 라디슬라프 샬룬(Ladislav Jan Šaloun, 1870~1946)’에 의해 세워졌으며 기단(基壇)에는 서로를 사랑하라. 모든 이들 앞에서 진실(혹은 정의)을 부정하지 마라.” 라고 하는 종교재판에 대한 항소 이유서의 한 구절이자 후스의 옥중서신 열 번째 편지의 마지막 구절이 적혀있습니다. 부패한 성직자들과 신앙심을 부추겨 편취에 앞장서는 일부 종파나 교단의 득세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체코의 종교개혁가, 민족운동의 지도자, 얀 후스와 같은 위인의 출현은 두 팔 벌려 환영할만한데 얀 후스란 인물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는 것은 구시가 광장의 슬픈 역사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프라하의 신시가지 지역 노베메스토(Nové Město)’에서 젤리프스키(Zelivský)’가 주도하는 일련의 강경파 후스주의자들이, 수감된 동료 후스주의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다가 그것을 거절하는 시의회 의원들을 신시청사 건물 창밖으로 내던져버린 이른바 프라하 창밖 투척사건(Pražská defenestrace)’이라 불리는 종교 분쟁이 1419년과 1618년에 유사한 형태로 잇따라 발생하며 각각 후스파 전쟁’, ‘30년 전쟁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그리하여 1620118일에 벌어진 30년 전쟁의 초기 전투 중 하나인 백산 전투(Battle of White Mountain)’에서 안할트-베른부르크 대공 크리스티안 1가 지휘하는 20,000명의 보헤미아 군대와 용병들이 카렐 보나벤투라 부쿼이(Karel Bonaventura Buquoy)’가 지휘하는 25,000명의 신성로마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2의 군대와 틸리 백작 요한 체르클라에스가 지휘하는 가톨릭 동맹군에게 궤주당해 보헤미아의 시대의 종말을 고하게 되는 것입니다. 백산 전투의 패배로 수백 명의 캘빈파 성직자들이 추방되었고 신분의회(身分議會) 45명이 반란죄로 처형당했으며 보헤미아 왕 프리드리히 5(Friedrich V, 1596~1632)’와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스튜어트(Elizabeth Stuart, 1596~1662)’는 국외로 망명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또한 폭동의 주요 지도자 27명이 체포되어 광장에서 처형되었는데, 이로 인해 이 날은 피의 날(the Day of Blood)’이라 불리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이들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27개의 십자가가 바닥에 새겨지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이 체코인에게 종교적으로보다 민족적 의미로 더욱 부각되는 이유는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체코 역사와 전통문화의 단절은 물론 국가의 맥이 끊어졌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세습지로 전락하면서 합스부르크 절대 군주의 절대주의에 편입되어 1918년 독립을 쟁취할 때까지 300년간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지배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14세기 중반부터 16세기 초에 건축되어 내부의 주석과 납의 합금인 백랍으로 만든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된 성수대와 덴마크 천문학자로 루돌프 2가 매우 신임했던 조언자 티코 브라헤(Tycho Brahe)’의 묘 그리고 1673년에 만들어진 파이프 오르간으로 유명하고 후스파를 상징하는 황금성배를 녹여 만든 성모 마리아와 아기예수의 부조사이로 아담과 이브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뾰족하게 솟은 80m높이의 두 개의 쌍둥이 첨탑을 가진 틴 성모 마리아 교회(Chrám Matky Boží před Týnem)’와 프라하 시립 갤러리(Prague City Gallery)가 운영하는 13세기에 건축된 아름다운 외관을 가진 고딕 양식의 건물로 현대미술과 관련된 수많은 전시회와 건물 귀퉁이에 조각된 석종(石鐘)을 볼 수 있는 석종의 집(Dům U Kamenného zvonu)’, ‘얀 골츠 백작(Jan Arnost Golz)’에 의해 완공되었다가 1768프란 올드리치 킨스키(František Oldřich Kinsky)’ 백작이 인수하여 꾸민 로코코 양식의 궁전으로 현재는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을 둘러볼 수 있는 상설전과 특별전을 진행하고 있는 국립 미술관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1948년 이곳의 발코니에서 공산주의 지도자 '클레멘트 고트발트(Klement Gottwald)'가 체코의 민주공화국 해체를 선언하기도 했던 골츠킨스키 궁전(Palác Kinských)’, 킬리안 이그나츠 디엔첸호퍼(Kilian Ignaz Dientzenhofer)의 설계에 따라 1732년부터 1737년 사이에 건설된 바로크 양식의 성당으로 성 니콜라스의 생애를 그린 천장의 프레스코 화와 보헤미안 글라스가 아름답게 빛나는 왕관형태의 샹들리에가 유명하며 1920년 이전에는 체코슬로바키아 정교회의 성당으로 사용됐었던 성 미쿨라셰 교회(Kostel svatého Mikuláše)’ 등이 있습니다.




  관련 자료  ( 출 처 : 위키백과 )  


바로크 건축   < Baroque architecture >

16세기 말엽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바로크 시대의 건물 양식을 이르는 용어이며, 르네상스 건축 양식에 로마식 표현 형식을 첨부한 것이 특징이다. 바로크 건축 양식은 역동성과 거대한 규모의 기념성을 지니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가톨릭교회의 영광과 전제주의 왕정의 강력하고 절대적인 힘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바로크 건축 양식은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극대화하면서 형태와 색을 도드라지게 하여 극적인 강렬함을 불러일으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르네상스 운동이 이탈리아 궁정의 부와 권력을 등에 업은 현세의 권력과 종교적 권력의 조합이었다면, 바로크는 적어도 초창기에는 개신교가 태동한 종교개혁에 대한 대처로 가톨릭교회가 스스로 개혁에 나선 가톨릭 개혁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다. 바로크 건축과 조각 장식물은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는 한편 교회의 승리와 권위를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 새로운 건축 양식은 대중의 신앙심을 증진시키려고 한 테아티노회와 예수회 같은 새로운 수도회의 건물에서 특히 잘 나타났다.

로마식 바로크 건축 양식 시기는 대략적으로 교황 우르바노 8, 교황 인노첸시오 10, 교황 알렉산데르 7세의 재위기간인 1623년부터 1667년 동안으로 보고 있다. 이 시기에 두각을 나타낸 주요 예술가들로는 조각가인 잔 로렌초 베르니니와 프란체스코 보로미니 그리고 화가 피에트로 다 코르토나이다. 이들은 각자 자신만의 독특하고 개성적인 건축 작품을 만들어냈다.

17세기 동안 바로크 건축 양상은 예수회의 활동을 통해 유럽 및 남아메리카 전역으로 널리 퍼져 나갔다.


로코코   < Rococo >

18세기 프랑스에서 생겨난 예술형식이다. 어원은 프랑스어 rocaille(조개무늬 장식, 자갈)에서 왔다.

로코코는 바로크 시대의 호방한 취향을 이어받아 경박함 속에 표현되는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장식, 건축의 유행을 말한다. 바로크 양식이 수정, 약화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로코코는 왕실예술이 아니라 귀족과 부르주아의 예술이다. 다시 말하자면, 유희와 쾌락의 추구에 몰두해 있던 루이 14세 사후,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귀족계급이 추구한, 사치스럽고 우아한 성격 및 유희적이고 변덕스러운 매력을, 그러나 동시에 부드럽고, 내면적인 성격을 가진 사교계 예술을 말하는 것이다. 귀족계급의 주거환경을 장식하기 위해 에로틱한 주제나 아늑함과 감미로움이 추구되었고 개인의 감성적 체험을 표출하는 소품위주로 제작되었다. 또한 로코코에서는 중국 양식이 많이 유행하였다.

로코코란 낱말이 서양 예술사에서 전문용어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아마 1840년대로 보인다. (1842년 프랑스 학술원에서 이 낱말의 사용 인정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좁은 의미에서 로코코란 루이 15세 시대 (1730- 1750)에 유행하던 프랑스 특유의 건축의 내부 장식, 미술, 생활용구의 장식적인 양식을 의미한다. (조개무늬를 장식으로 많이 쓰기 때문에 style de rocaille라고 부른다). 후에 이 국한된 의미를 벗어나 예술사를 연구하는 이들 사이에서 후기 바로크를 이어주는 건축과 서양미술의 한 예술 양식으로 쓰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로코코는 바로크나 르네상스처럼 한 시대를 대표하는 사조라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18세기는 로코코 뿐만 아니라 바로크, 고전주의, 낭만주의가 병존하는 시대이며, 이 시기에 유행하고 나타난 예술양식들은 서로 간에 영향을 받고 주는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건축물로 상수시 궁전(Sans-Souci Palace)이 있다.


퇴창  < 退窓 >

벽 밖으로 쑥 내밀도록 물려서 낸 창.


지구중심설  < 地球中心說  /  Geocentrism >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모든 천체가 지구 주위를 돈다는 학설이다. 천동설(天動說)이라고도 불리는 이 우주론은 크게 나누어, 에우독소스가 고안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체계에 받아들여진 동심천구가설과 프톨레마이오스 천동설의 두 종류가 있다. 단순히 천동설이라고 하면 마지막으로 체계를 완성시킨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지동설에 의해서 이 견해는 오류로 판명되었다.


마네스   < Josef Ma´nes  |  1820512~ 1871129>

체코슬로바키아의 화가. 국민운동(1848)에 자극되어 농민 예술을 연구하고, 그 체험에 기초하여 체코슬로바키아의 리얼리스틱한 근대적 회화를 건설했다.


황도대   < 黃道帶  /  zodiac  /  ζδιακός >

점성술과 역사적 천문학 모두에서, 한 해 동안에 천구를 가로지르는 태양의 외견상 경로인 황도를 중심으로 하는 천체 경도의 30°씩의 구간들의 원이다. 천구의 위도에서 측정될 때, 달과 가시적 행성의 경로 또한 황도의 남쪽이나 북쪽으로 8~9° 범위인 황도대의 띠 내에서 황도와 가깝게 유지된다. 역사적으로, 이 열두 구간은 별자리라고 불린다. 기본적으로, 황도대는 황도를 황위의 원점으로 하고 춘분점에 있는 태양의 위치를 황경의 원점으로 하는 천구 좌표계 또는 더 분명히는 황도 좌표계이다.


얀 후스   < Jan Hus  |  1372~ 141576>

체코의 기독교 신학자이며 종교개혁가이다. 그는 존 위클리프의 영향으로 성서를 믿음의 유일한 권위로 강조하는 복음주의적 성향을 보였으며, 로마 가톨릭 교회 지도자들의 부패를 비판하다가 1411년 대립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파문당했다. 콘스탄츠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1415년 화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그가 화형당한 이후 그의 사상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보헤미안 공동체라는 공동체를 만들고, 그의 주장은 마르틴 루터 등 알프스 이북의 종교 개혁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현재에는 18세기 이후에 설립된 모라비아 교회 혹은 체코 개신교라는 명칭으로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젤리프스키   < Jan Zelivsky >

보헤미아의 후스파 혁명기의 급진적 사제. 1419730, 수천 명의 프라하 시민이 시청사를 습격하고 의원, 성직자를 창밖으로 내던진 사건 때의 지도자. 빈민의 설교사로서 급진적인 타보르파와의 연대를 지향하고, 216, 타보르파의 지도자의 한 사람인 흐베즈라 (Hvezda z Vicemilic)의 지원으로 프라하에 일종의 독재정부를 만들었다. 이듬해 3, 가톨릭교회와의 타협을 원했으나 우트라키스트파에 의해 은밀히 처형되었다.


클레멘트 고트발트  < Klement Gottwald  |  18961123~ 1953314>

체코슬로바키아의 정치인으로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위원장과 총리, 대통령을 지냈다.

1921년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을 창당했다. 1925년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된 뒤부터 공산당 내부에서 여러 직책을 맡았다. 1945년부터 1953년까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위원장을 역임했고 부총리(1945~1946)와 총리(1946~1948), 대통령(1948~1953)을 지냈다.

1945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통령이자 영국 런던 주재 체코슬로바키아 망명 정부 대표인 에드바르트 베네시로부터 정부 수반에 임명되었다. 19465월에 실시된 체코슬로바키아 총선거에서 공산당이 38%의 지지율을 얻어 승리한 뒤부터 총리로 취임했다. 194867일 에드바르트 베네시가 대통령을 사임하자 같은 해 614일에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고트발트 정부는 농업과 공업의 국유화를 적극 추진했다.

스탈린주의자이기도 했던 그는 정부내 반()소련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공산주의자가 아닌 정치인을 배제하는 한편 공산주의자들도 숙청했다. 고트발트로부터 숙청당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루돌프 슬란스키와 블라디미르 클레멘티스, 구스타프 후사크가 있다. 이 중 슬란스키와 클레멘티스는 교수형에 처해졌으며 후사크는 종신형에 처해졌지만 나중에 복권되어 공산당 제1서기를 역임하게 된다.

195339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스탈린의 장례식이 끝나고 귀국한 지 5일 만에 사망했다. 그의 사망 원인은 매독과 과음으로 인한 심장 질환으로 추정된다. 그의 시체는 방부 처리되어 이를 봉인하는 건물이 지어졌지만 1962년에 철거되었고 그의 시체는 화장되었다.







 


#07. 바츨라프 광장   ( Wenceslas Square )


07 - 1. 기 본 정 보               _ 출 처 : Sygic


  명 칭

  Václavské náměstí

  완공(설립) 년도

  1348

  주 소 (위치)

  Wenceslas Square, 110 00 Prague 5, Czech Republic

  유 형 (분류)

  광장  쇼핑지구

  구역면적

  길이 750m  |  너비 63m

  입장시간

  국립 박물관 역사관 매주 월요일 ~ 일요일 AM 10:00 ~ PM 18:00

  시설물 이용시간

  1 시간

  입장료

  국립 박물관 역사관 Adults : Kč 200

  휴관일

  -

  이용문의

  -



  관련 링크  

■ Charles University Multimedia Project #Jan Palach

These web pages present the life story of Jan Palach, a student of the Faculty of Arts, Charles University in Prague who set himself on fire in Wenceslas Square ...

   Jan Palach #Introduction  

■ Historical Building of the National Museum

výstavní projekt Sametová revoluce Národní muzeum se zapojuje do oslav výročí 17. listopadu výstavním projektem Sametová revoluce. Přijďte si prohlédnout několik výstav včetně nově otevřené spojovací chodby...

   Národní muzeum  




07 - 2. 교 통 정 보               _ 출 처 : Google 지도



  현지 이동

  도보

  총 거 

  약 1 ㎞

  예상 소요시간

  약 12 분

  예상 통행료

  -

  예상 주유비

  -

  경 로

  카렐교  ( Charles Bridge )  ▶  바츨라프 광장  ( Wenceslas Square )

 


07 - 3. 바츨라프 광장  ( Václavské náměstí )



 


 


바츨라프 광장은 중세 시대 카를 4(Charles IV)’에 의해 조성된 신시가지에 속해있는 광장입니다. 원래는 마() 시장이었으나 1848년 보헤미아의 시인 카렐 하블리체크 보로프스키(Karel Havlíček Borovský)’의 제안으로 10세기에 보헤미안 기사들과 함께 적군을 물리쳐 국난을 극복하는데 기여한 인물이며 보헤미아의 공작이자 체코의 로마 가톨릭교회 성인인 바츨라프 1(Václav I. 907~935)’의 이름을 딴 바츨라프 광장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현재는 중앙 녹지를 경계로 차도와 인도로 나뉜 채, 도시의 상업 및 행정 중심지로 현지인과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입니다. 또한 구시가지가 관광의 중심이라면 바츨라프 광장은 역사지구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체코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무대이며 시민 다수가 자발적으로 봉기한 민주화의 상징적 장소이기도 합니다.




 


 



광장의 남쪽 끝에는 체코 조각가 요셉 바츨라프 미슬벡(Josef Václav Myslbek, 1848~1922)’1913년 공개한 체코의 수호 성인(聖人)성 바츨라프 청동기마상(Pomník svatého Václava)’이 성자 4, 성 루드밀라(Saint Ludmila, 860~921), 성 아녜스(Saint Agnes, 1211~1282), 성 프로코피우스(Saint Procopius, 970~1053), 성 아달베르트(Saint Adalbert, 956~997)의 수호를 받으며 우뚝 서 있습니다. 기마상이 설치된 광장 인근이 가이드투어의 집합장소인 동시에 프라아 여행의 출발지가 되곤 하는데 그것은 단지 만남의 장소로 유명해서가 아니라 지난(至難)한 고통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갈구했던 자존과 자립을 실현할 수 있었던 체코 근현대사의 태동이 시작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기마상 앞에는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베르사유조약에 따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하자, 제국의 속령이었던 체코슬로바키아가 같은 해 1028일 독립을 선포하고 공화국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선언문 낭독일인 ‘1918. X. 28’이 새겨져 있습니다.


1818년 완공되어 대규모 보수작업으로 장기간 폐관되었다가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 창립 100 주년을 기념하여 20181028일 대중에게 공개된 국립박물관(Národní muzeum)’ 앞에는 1968년 공산당 제1서기 알렉산데르 둡체크(Alexander Dubček, 1921~1992)’에 의해 프라하의 봄으로 불리는 자유화개혁운동이 추진되었으나 소비에트 연방과 바르샤바 조약군의 침공으로 좌절되자 소련의 압제에 항거하며 목숨을 끊은 얀 팔라흐(Jan Palach)’얀 자이츠(Jan Zajíc)’ 두 젊은이를 기리는 기념비(Památník Jana Palacha a Jana Zajíce)’가 있습니다. 프라하의 봄은 소련의 군사 개입으로 큰 희생을 치렀고 그 흔적은 콘크리트로 덮였지만 결국 1989년에 같은 장소에서 공산 정권의 몰락을 이끌어 낸 벨벳 혁명(sametová revoluce)’이 일어나 19903월 국명을 체코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으로 변경하고 19906월에는 신헌법에 따라 자유총선을 실시하여 새로운 민주정부를 구성하였으며 199311일 체코슬로바키아는 1992년 연방의회의 승인에 따라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2개의 독립국으로 분리되면서 진정한 독립을 이뤄내게 됩니다.



 


 



합스부르크 왕가(Habsburg, 1273~1918)의 속령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찬란한 중세의 문화유산을 지키고자 아무런 저항 없이 지배권을 내놓았던 어리석음은 치욕적인 역사의 산물이라는 평가와 함께 폭력 앞에 무기력하고 비굴했던 역사를 청산하기위해 피 흘리며 저항했던 수많은 젊은이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이 광장과 함께 호흡하고 있어 그 의미를 되새겨보는 뜻 깊은 공간으로 활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관련 자료  ( 출 처 : 위키백과 )  


카를 4세   < Charles IV  |  1316514~ 13781129>

카를 4세는 체코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보헤미아의 왕, 로마의 왕, 신성로마제국 황제, 이탈리아 왕, 부르군디 왕 등 많은 지위를 이용해 보헤미아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성장에 기여한 인물이다. 카를 4세는 통치 기간 동안 프라하를 신성로마제국의 수도로 정하고 중부 유럽 최초로 대학을 설립하는 등 학문과 예술의 발전에도 커다란 기여를 했다. 카렐 4세는 금인칙서를 발표해 제국의 황제 선출을 명문화하여 19세기 신성로마제국이 해체될 때까지 제국의 기틀이 되는 원칙을 마련했다.


카렐 하블리체크 보로프스키  < Karel Havlíček Borovský  |  18211031~ 1856729>

체코의 저널리스트이자 시인이다. 그는 근대 체코 저널리즘의 실제적인 창시자로 체코 저널리즘의 상징적 인물이다.

'나로드니 노비니(Národní noviny)''슬로반(Slovan)'이라는 신문을 발간해 혁명운동과 체코 민족운동을 이끌어 나갔다. 그는 굽힐 줄 모르는 저항 정신으로 1851년 티롤의 브릭센으로 유배 되었다가, 병에 걸려 돌아온 지 1년만인 1856년 죽었다. 그의 장례식장에는 프라하의 애국자들이 대거 집결하여서 바흐 절대주의 하에서 최대의 시위를 일으켰다.


프라하의 봄   < Pražské jaro >

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비에트 연방이 간섭하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화 시기를 일컫는다. 이 시기는 196815일에 슬로바키아의 개혁파 알렉산데르 둡체크가 집권하면서 시작되었으며, 821일 소비에트 연방과 바르샤바 조약 회원국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여 개혁을 중단시키면서 막을 내렸다.

프라하의 봄 당시 둡체크는 경제와 정치면에서 부분적인 분권화를 실시하여 시민의 자유를 좀 더 보장하는 개혁을 시도하였다. 이 가운데는 보도, 표현, 이동의 자유 제한을 폐지하는 것도 있었다. 또 둡체크는 두 개의 개별 공화국으로 이루어진 연방으로 개편하였는데, 이 조치는 프라하의 봄이 끝나자 다시 좌절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개혁은 소련측에서 달갑지 않은 일이었으며, 소련은 협상이 실패하자 장갑차와 탱크를 보내어 이 나라를 침공하였다. 대규모 이주 물결이 체코슬로바키아를 휩쓸었다. 한 학생이 자살 항의를 하긴 하였으나 사람들은 비폭력 시위로 대응하였으며 군사 저항은 없었다. 이 시기에 소비에트 연방군이 장갑차와 탱크를 앞세워 무고한 시민들을 죽이자 전 세계 여론의 비판이 일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1989년까지 점령 상태가 된다.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한 소비에트 연방군은 당중앙위원회를 해체시키고,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이자 체코슬로바키아의 1서기였던 알렉산데르 둡체크를 외국으로 망명시켰다. 바르샤바 조약군의 침공 이후 체코슬로바키아는 정상화의 과정에 들어가는데, 이후 지도자들은 둡체크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KSČ)을 장악하기 전에 우세했던 정치적/경제적 가치를 복원하고자 하였다. 둡체크의 뒤를 이어 집권한 구스타프 후사크는 대통령에 올라 둡체크의 모든 개혁을 무효로 돌렸다.


얀 팔라흐  < Jan Palach  |  1948811- 1969119>

체코의 학생으로, 소련의 침략에 대한 저항하는 뜻으로 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Václavské náměstí)의 위쪽 국립 박물관 앞에서 분신하여 목숨을 끊었다.

얀 팔라흐의 죽음은 계속되는 점령에 대한 큰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약 한 달 후인 1969225일 같은 장소에서 또 다른 학생 얀 자이츠(Jan Zajíc)가 자신을 불살랐고 19694월 이흘라바(Jihlava)에서 에브젠 플로첵(Evžen Plocek)이 뒤를 따랐다. 이러한 저항이 여론을 뒤흔들었지만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정치 상황에 충격을 주는 데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공산주의가 무너진 후 얀 팔라흐가 분신한 위치에 청동상이 세워지고 그를 기리는 뜻에서 루돌피눔(Rudolfinum)과 카를 대학 철학부 앞의 광장의 이름을 얀 팔라흐 광장(náměstí Jana Palacha)으로 바꾸었다. 얀 팔라흐가 분신한 다음 해에 체코슬로바키아를 떠나 독일로 간 체코의 천문학자 루보시 코호우텍(Luboš Kohoutek)1969822일 자신이 발견한 소행성을 1834 팔라흐로 명명하기도 하였다.






 

 


#08. 캄파 섬  ( Kampa Island )


08 - 1. 기 본 정 보               _ 출 처 : Sygic


  명 칭

  Kampa Island

  완공(설립) 년도

  12 세기

  주 소 (위치)

  8b Na Kampě, 11800, Praha

  유 형 (분류)

  섬  공원

  구역면적

  -

  입장시간

  -

  시설물 이용시간

  1 시간

  입장료

  -

  휴관일

  -

  이용문의

  -



 

08 - 2. 교 통 정 보               _ 출 처 : Google 지도



  현지 이동

  도보

  총 거 

  2.1 ㎞

  예상 소요시간

  약 25 분

  예상 통행료

  -

  예상 주유비

  -

  경 로

  카렐교  ( Charles Bridge )  ▶  캄파 섬  ( Kampa Island )

 


08 - 3. 캄파 섬   ( Kampa Island )




 

  


캄파 섬을 가기위해 다시 말라스트라나 자치구로 돌아왔습니다. 카렐교에 연결된 계단을 통해, 730m에 이르는 좁은 수로가 흘러 프라하의 작은 베니스로 불린다는 전원풍이 감도는 작은 섬, 캄파 섬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번잡한 프라하 시내를 벗어나 한적하게 산책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곳으로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원과 블타바 강변에서 예쁜 사진을 담거나 사색의 시간을 갖는 여행객이나 현지인들로 사랑받는 곳이기도 합니다.


목적지를 향하던 중, 비틀즈 음악이 흘러나오는 존 레논 펍(John Lennon Pub)’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가 우측 벽면의 홍수 표지를 보고 홍수가 잦은 곳이리라 추정하며 돌아섭니다.




 



악마가 살았다는 전설에서 기인한 악마의 수로와 물레방아(Water Mill), 섬을 잇는 다리 위 철제 난간에는 영원불변의 사랑을 다짐한 연인들의 자물쇠들이 채워져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연인들이 사랑을 다짐하는 장소라고하기엔 부적절해 하면서도 사랑에 대한 비유를 이런 식으로 접근했나 싶어 수긍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데 연인들이 사랑을 다짐하는 장소, 섬을 잇는 다리, 악마의 전설, 물레방아를 조합하면 뭔가 어른스러운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을 법한 상상력이 동원됐기 때문입니다.






저 멀리 레논 벽(Lennonova zeď)’이 보입니다. 원래 평범한 벽이었으나 1980년 암살된 존 레논(John Lennon)‘을 추모하며 자유를 열망하던 체코 젊은이들이 반공산주의와 사회비판에 대한 메시지를 벽에 적어놓으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이 건물은 몰타 공화국의 대사관 담이었는데, 몰타 공화국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며 낙서들을 지우지 않았고 체코 당국 역시 치외법권에 해당되어 이 벽은 평화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관련 자료  ( 출 처 : 위키백과 )  


존 윈스턴 오노 레논   존 윈스턴 레논  < John Winston Ono Lennon  /  John Winston Lennon  |  1940109~ 1980128>

영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대중음악 사상 가장 성공했으며 또한 가장 영향력 있는 밴드인 비틀즈의 창립 멤버다. 그는 동료 폴 매카트니와 함께 가장 위대한 파트너십 중 하나로 간주되는 작곡 파트너십을 맺었다.

리버풀에서 나고 자란 레논은 청소년기에 대유행한 스키플에 편승하여 그의 첫 밴드인 쿼리멘을 결성하였고 1960년에 이름을 비틀즈로 바꾸어 활동했다. 1970년 비틀즈 해체 뒤 레논은 John Lennon/Plastic Ono Band, Imagine등의 음반과 Give Peace a Chance, Working Class Hero, Imagine등의 곡을 발표하면서 산발적인 솔로 활동을 벌였다. 1969년 오노 요코와 결혼한 후 미들 네임에 "오노"를 추가한 그는 1975년부터 아들 숀을 돌보기 위해 음악 활동을 중단했고, 1980Double Fantasy를 발표하면서 복귀했으나 같은 해 12월 마크 채프먼이 쏜 총에 맞아 향년 40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레논의 마지막 음반이 된 Double Fantasy1982년에 열린 제24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음반을 수상했다.

레논은 자신의 반항적인 성향과 통렬한 재치를 음악, , 그림, 영화, 인터뷰를 통해 표현했다. 1971년 미국 맨해튼으로 이주한 뒤로 체류 전반에 걸쳐 논란이 되는 정치적 및 평화 운동을 전개했으며 그의 베트남 전쟁에 대한 비판은 리처드 닉슨 행정부가 그를 추방하기 위한 오랜 시도를 낳았고, 한편 그가 작곡한 곡들은 반전쟁 운동의 앤섬으로 채택되거나 더 큰 반문화를 구축하는데 일조한다.

2012년 레논의 솔로 음반 판매량은 미국에서만 1,400만 장을 돌파했다. 그가 공연자, 단독 및 공동 작곡가로서 쓴 25개의 싱글이 미국 핫 100 차트 정상에 올랐다. 2002100명의 위대한 영국인을 묻는 BBC의 설문조사에서 8위로 선정되었고, 롤링 스톤이 선정한 100명의 가장 훌륭한 가수에서 5위를 차지했다. 1965년 비틀즈의 다른 멤버들과 함께 대영 제국 훈장 5등급을 수여받았지만, 레논은 영국의 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비판의 의미로 후에 이 훈장을 반납했다. 그는 사후인 1987년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1988년에 비틀즈의 멤버로, 1994년에 솔로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두 번 헌액되었다.





지면 관계상 프라하 두 번째 장은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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