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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기록

유럽 3대 야경으로 꼽히는 천년의 고도, 프라하 #2 < Praha >



자리여행 기록

해외 여행 부문 : 유럽 3대 야경으로 꼽히는 천년고도프라하  #2

원문 : 자리의 달콤한 꿈 이야기

글 : 자리 | 이미지 : 중부유럽의 문화수도, 프라하   ( Praha in Czech )





모든 자료는 여행 순으로 기록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블로그 작성 시점에 따라 실질적인 여행기간과 업로드 된 일부 자료사이에 간극이 발생할 수 있으나 블로그에 명시된 시세나 정보는 블로그 공유 시점(2020년 4)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으므로 그 이후 변화에만 주의하시고, 게시된 모든 여행기록은 정보공유와 현지 여행 희망자의 참고를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모든 사진은 클릭하면 확대되며 또 다른 블로그 네이버 블로그와 함께 합니다. 또한 이 블로그는 네이버 웨일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 있어 모바일을 포함한 플랫폼에서는 화면 상태가 고르지 못할 수 있습니다.


게시 글의 사진 이미지는 201508월에 담은 사진을 업로드 한 것임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프라하 두 번째 장을 계속 이어갑니다.






 


#09. 프라하 성   ( Prague Castle )


09 - 1. 기 본 정 보               _ 출 처 : Sygic


  명 칭

  Pražský hrad

  완공(설립) 년도

  880 년경

  주 소 (위치)

  119 08, Prague 1, Czech Republic

  유 형 (분류)

  성  성곽

  구역면적

  길이  약 570 m  |  너비  약 130 m

  입장시간

  프라하 성 단지  -  매주  AM 06:00 ~ 22:00 

  역사적인 건물들  ( 동절기  -   11~ 3월   AM 09:00 ~ 16:00  /  하절기  -  4~ 10월  AM 09:00 ~ 17:00 )

  시설물 이용시간

  4 시간

  입장료

  프라하 성 관람코스 A  –  Adults  :  Kč 350  |  관람코스 –  Adults  :  Kč 250   |  관람코스 C  –  Adults  :  Kč 350

  ‘프라하 성 이야기전시관  –  Adults  :  Kč 140  |  프라하 성 미술관  –  Adults  :  Kč 100  |

  화약탑, 성 근위대 전시관  –  Adults  :  Kč 70  |  ‘성 비투스 보물전시관  –  Adults  :  Kč 250  |

  성 비투스 대성당 남쪽 거탑 전망대  –  Adults  :  Kč 200

  휴관일

  -

  이용문의

  +420 224 373 368



  관련 링크  

■ 관람객을 위한 프라하 성

개방 시간 역사적인 건물들 입장권 가이드 서비스 프라하 성 지도 연락처 프라하 성 문화행사 프라하 성 체코 역사와 오랫동안 함께한 체코의 상징이자 가장 의미 있는 체코의 유적지이며, 또한 가장 중요한 문화유적지 중 하나입니다.

   Prague Castle for Visitors  

■ 성 비투스, 성 바츨라프와 성 아달베르트의 대성당

Welcome to the website of the St. Vitus Cathedral, the first temple of our country, where for ages the hopes, fears and longings of past generations have been formed, where the ecclesiastic and the worldly power have...

 『  Katedrála svatého Víta  




09 - 2. 교 통 정 보               _ 출 처 : Google 지도



  현지 이동

  대중교통  ( T 22 )

  총 거 

  1.2 ㎞

  예상 소요시간

  약 20 분

  예상 통행료

  -

  예상 주유비

  -

  경 로

  캄파 섬   ( Kampa Island )  ▶  프라하 성  ( Prague Castle )




09 - 3. 프라하 성   ( Prague Castle )




 


 





자유롭게 참가한 프리투어 마지막 행선지가 될 프라하 성을 향해 트램에 올랐습니다. 성의 경내로 진입하기 위해선 실질적인 정문인 흐라드찬스케 광장(Hradčanské náměstí)’의 서문과 말라스트라나 지구의 동문, 왕실정원이 있는 북문 중 한곳을 통과해야 하는데 안내자의 지시에 따라 하차 후 북문지점으로 입장해 입장권 구매 등의 절차를 위해 잠시 흐라드찬스케 광장에 머물렀습니다.





 



프라하 성 입구에 위치한 흐라드찬스케 광장엔 체코슬로바키아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토마시 가리크 마사리크(Tomáš Garrigue Masaryk)’의 탄생 150주년 기념 동상 외에도 대주교 궁전(Arcibiskupský palác)’슈바르첸베르크 궁전(Schwarzenberský palác)’ 등이 있으며, 매일 정오에는 근위병 교대식을 구경하려는 인파로 북적댑니다. 탁 트인 광장에서 바람을 맞으며 일행과 담소를 나누거나 프라하 시내의 전경을 보기위해 아래를 굽어보는 사람들, 프라하 시를 배경으로 자신의 모습을 담는 사람들로 광장은 굉장히 활기찬 모습입니다. 그런 여행객들의 표정이나 갖가지 행위들을 넋을 놓은 채 바라보고 앉아 있는데 달콤한 휴식을 끝내려는 안내자의 음성이 저 멀리서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경내투어의 시작이 임박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체코 역사와 오랫동안 함께해 온 프라하 성은 체코의 상징이자 가장 의미 있는 체코의 유적지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및 자연 유산 목록에도 등재되어 있습니다.

프라하 성은 880년경에 체코를 탄생시킨 인물로 여겨지는 보헤미아의 프르셰미슬 왕조(Dynastie Přemyslovců, 867~1306)’보르지보이 1(Bořivoj I, 852~889)’ 군주-제후(君主諸侯)에 의해 설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전체 면적이 7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넓은 성 복합지구로서 12세기 로마네스크 건축유물부터 20세기 말의 증축 공사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유지, 보수, 개축을 통해 다양한 건축 양식의 수많은 궁전, 성당, 교회 건물의 복합체로 구성된 성채단지입니다.


입장권의 종류가 다양해서 선택을 주저하는 분들이 계실 텐데 비용 대신 효율성이 뛰어난 관람코스 B’의 입장권을 선호하는 관람객들이 다수임을 감안하여 입장권을 구매하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유럽전역에 테러위협이 고조된 후로는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보안검사가 철저하게 진행되고 있으니 부피가 큰 수화물은 가급적 자제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입장권 종류

 관람 코스

 일반 입장료

 프라하 성 : 관람 코스 A

 구왕궁  /  '프라하 성 이야기' 전시관  /  성 이르지 바실리카  /  황금 소로  /  화약탑  /

 성 비투스 대성당  /  로즘베르크 궁전

 CZK 350

 프라하 성 : 관람 코스 B

 구왕궁  /  성 이르지 바실리카  /  황금 소로  /  성 비투스 대성당

 CZK 250

 프라하 성 : 관람 코스 C

 '성 비투스 보물' 전시관  /  프라하 성 미술관

 CZK 350

 '프라하 성 이야기전시관

 

 CZK 140

 프라하 성 미술관

 

 CZK 100

 화약탑 성 근위대전시관

 

 CZK 70

 성 비투스 보물전시관

 

 CZK 250

 성 비투스 대성당 남쪽 거탑 전망대

 

 CZK 200



먼저 티탄(Titan)‘의 야외조각이 설치된 아치형의 입구(Zápasící Titáni)를 지나게 되는데 이 조각의 형상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가 체코를 지배할 당시에 세운 것으로 체코에게는 오욕의 역사를 상징하지만 후대에 교훈을 주기위한 표상으로 철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전해집니다. 뒤이어 국빈을 맞이하는 제1 광장과 17세기에 마티아스(Mattias, 1557~1619)‘ 황제에 의해 건축된 관문(Matyášova brána)을 통과하면 중앙에 배치된 코르 분수(Kohlova kašna)’를 비롯해 우측의 대통령 관저’, 1763년 건축가 안젤모 루라고(Anselmo Lurago)’에 의해 완공되고 1960년대 개축되어 139개의 유물함과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높은 예배용품을 보관하던 성 비투스 보물창고의 유물을 전시하여, ‘보물실(Klenotnice)’ 로 불렸던 성 십자가 예배당(Kaple svatého Kříže)’ 그리고 좌측의 입장권을 판매하는 관광안내소와 왕궁미술관이 있는 제 2광장과 만나게 됩니다. 대통령 관저의 계양된 국기는 체코 내에 대통령이 머물고 있음을 의미하며 미술관의 문들은 각각 왕실정원으로 통하는 문과 제3 광장으로 이어지는 통로로 사용됩니다.



 



 



구매한 입장권의 관람코스는 제3 광장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첫 번째 코스는 체코의 국왕과 여왕의 대관식이 거행되기도 했던 체코의 정신적 심볼, 3인의 성인에게 헌당된 성 비투스 대성당(Katedrála svatého Víta, Václava a Vojtěcha)’ 이었습니다. 925년경 건립된 프레-로마네스크 양식의 원형 성당인 로톤다(Rotonda) 자리에 1344년 고딕 양식의 성 비투스 대성당이 카를 4세에 의해 최초 건축되기 시작해 1419년에 보헤미아의 종교 개혁가 얀 후스를 추종한 후스파와 그들에게 로마 가톨릭교회 권위를 강제하려 한 여러 군주들 사이에 벌어진 후스파 전쟁(Husitské války, 1419~1434)’으로 인해 중단되었다가 거의 600년이 소요된 시점인 1929년에 완공되었으며 그 이후에도 내부 리모델링은 계속 되었다고 합니다.




 


 


 


 


 


 



 



전체 길이 124m, 너비 60m, 높이 33m의 건물은 프라하 경내에서 가장 화려한 자태를 지녔으며 내부의 인테리어 또한 매우 인상적입니다. 성당 내에는 시대변천에 따라 다양한 기법이 활용된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는데 그중 체코의 화가이며 장식 예술가인 아르누보 시대의 대표적인 일러스트레이터 알폰스 마리아 무하(Alfons Maria Mucha, 1860~1939)’의 아르누보풍 스테인드글라스가 가장 유명합니다. 특히 서쪽 측랑의 좌측에 있는 성 키릴과 성 메토디우스(St. Cyril and Methodius)는 무하의 걸작으로 꼽힙니다.




 



성당의 중앙과 지하 왕릉, 주 제단 뒤쪽의 7개의 예배당에는 성 비투스와 같은 성인들의 전설과 관련된 장면을 묘사하는 부조(浮彫)와 유골뿐 아니라 카를 4세 등의 왕과 영주, 귀족, 대주교들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으며 제단 우측에는 성 얀 네포무츠키의 묘와 2톤의 은을 녹여 만든 조각상이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수난과 성 바츨라프의 일생을 묘사하는 벽화들과 준보석으로 치장된 성 바츨라프 예배당(Kaple sv. Václava)‘은 바츨라프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성인의 유해를 안치하고 있어 성 비투스 성당의 핵심코스로 손꼽히며 대관식 보물을 보관하는 재관실(Korunní komora)’로 통합니다.






다음 코스로 진행하기 위해 외부로 나가면 오벨리스크(Obelisk)‘와 거의 100 미터 높이의 남쪽 거탑(Velká jižní věž katedrály sv. Víta)’이 눈에 들어옵니다. 별도의 입장권을 통해 287개의 계단을 정복하면 종지기 6인이 필요한 대성당의 종과 프라하의 전망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통로가 비좁고 체력적으로 부담되는 코스이기 때문에 체코의 조상들이 체력조건이 그다지 훌륭하지 않은 관광객들까지 고려하지 못해 양해를 구한다는 안내 글귀를 보고 올라가면 다소 도움이 될 것도 같습니다.





구왕궁(Starý královský palác)‘9세기에 목조건물로 지어졌던 왕궁을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신축한 이후, 카를 4세가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을 증축하여 원형천장의 공식 접견 홀과 북쪽으로 이어진 아케이드를 갖춘 신생 고딕 양식의 궁전을 건축하였으며 바츨라프 4세의 통치 기간에는 2개의 수직 별관이 증축되었고 모든 성인들의 예배당(Kostel Všech svatých)’이 재건되었습니다. 1483년 이후에는 야기에우워(Jagiellonowie) 왕조의 블라디슬라프 2(Vladislav II)’가 방치됐던 궁전을 다시 대규모로 재건하기 시작해, 둥근 천장의 늑골구조를 갖는 중세시대 프라하에서 가장 큰 비종교 건축물인 블라디슬라프 홀(Vladislavský sál)‘이 탄생되었으며, 체코 공화국 보헤미아의 대표적인 중세 건축가 베네딕트 레이트(Benedikt Rejt)는 후기 고딕 양식의 예술과 신생 르네상스 양식의 요소를 결합하여 홀을 완성하였습니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보헤미아의 왕위를 승계한 후, 블라디슬라브 홀은 당시에 기둥이 없는 건물로는 최대의 규모의 연회장이자 왕의 대관식을 열었던 곳이기도 하며 내부는 기타 회의실, 사무실 및 보관실들이 포함되었습니다. 1541년 대화재 후, 의회와 모든 성인들의 성당이 재건되었다고 합니다.





세 번째 관람코스인 성 이르지 바실리카(Bazilika svatého Jiří)’는 성 비투스 대성당 뒤쪽의 이르지 광장(náměstí U svatého Jiří)‘에 있는 후진(後陣)과 두개의 하얀색 탑을 가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입니다. 920년경 대공 브라티슬라프 1(Vratislav I, 888~921)’에 의해 건립된 본래 성당의 기초가 잘 보존되어 있으며, 973년에 수녀원을 설립하며 증개축되었습니다. 1142년의 대화재로 소실된 후 재건되었으며 13세기 전반에는 성 루드밀라(sv. Ludmila) 예배당과 서쪽에 있는 입구인 주랑현관(柱廊玄關)이 증축되었고 바로크 시대에 접어 들어 건물정면부와 전체 수녀원이 개축되었습니다. 내부는 소박하지만 중앙 회랑에 브라티슬라프 1세를 포함한 프르셰미슬 왕가의 묘비들이 위치하고 있으며, 성녀 루드밀라의 예배당과 무덤, 성 얀 네포무츠키의 예배당이 있습니다. 좌측의 수도원은 1975년부터 국립미술관의 일부로 이용되고 있으며 현재는 단기 전시 공간 및 콘서트 홀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성 이르지 바실리카에서 동문 쪽으로 진행하다 로즘베르크 궁전(Lobkovický palác)’전의 우 달리보르키(u Daliborky)’ 거리에서 왼편으로 들어서면 색색의 아기자기한 집이 다닥다닥 늘어선 골목이 있는데 이곳이 마지막 관람코스인 황금소로(Zlatá ulička)‘입니다. 황금소로는 북쪽 요새 성곽이 신축된 이후 16세기부터 성 경비대, 시종이나 집사와 같은 일반 백성 외에 수공업자들이 거주하기 위해 건축되었으며 함께 건축된 성벽 반대쪽의 주거지는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시대에 철거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15채 정도가 보존되어 와서 대부분 기념품점으로 탈바꿈했는데 제1공화국 시대(1918)부터 개조를 통제해 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이곳의 명칭은 본래 금세공인들이 작업했던 것에서 유래한 금세공 소로라고 불렸으나 후에 황금소로로 개칭되었는데 15번지에서 그들의 거주가 증명되며 16세기 주거의 모습은 12번지의 집기를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이 골목이 많은 예술가들에게 호의를 얻은 덕분에 몇몇의 유명 인사들이 머물기도 했는데 체코 시인, 작가, 언론인이자 번역가로 개인주의와 예술지상주의를 지향하는 포에티즘 운동을 이끈 인물이기도 한 노벨 문학상 수상자, ‘야로슬라프 사이페르트(Jaroslav Seifert, 1901~1986)’와 나치 독일의 몰락과 히틀러의 죽음을 예측한 탓에 게슈타포(Gestapo)’에 의해 체포되어 심문 중 사망한 수정 구슬 및 타로카드 예언가 마틸다 프루쇼바(Matilda Průšová)’ 그리고 191611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여동생이 마련해준 거처에서 매일 글을 쓰고, 밤이 되어서야 자신의 하숙집으로 돌아가곤 했던 실존주의 대표작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등이 그렇습니다. 특히 소설가 카프카의 작업실이던 푸른색 22번지는 프라하성에서 모티프를 얻어 쓴 소설 (, Das Schloss)을 집필한 공간이라 관광객에게 더 인기이며 현재는 카프카 관련 서적과 엽서 등을 파는 서점이 되었습니다. 또한 계단을 오르내리며 골목을 구석구석 살피다보면 중세무기나 고문도구를 전시한 공간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동문을 나서기 전에 젊은이(Mládí)’라는 청동 조각품을 보기위해 잠시 성 관리청(Nejvyšší purkrabství)’의 안뜰에 들렀습니다. 체코 조각가 밀로스 젯(Miloš Zet, 1920~1995)’의 작품인 이 벌거벗은 젊은이의 조각은 소년의 은밀한 신체부위를 만지면 남아잉태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설이 있어 여성 관광객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으며 실제로 그 부위가 변색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제 프라하 성 샛길 전망대(Vyhlídka u Černé věže)에서 프라하 전경을 다시 한 번 만끽한 후, 서쪽에서 동쪽으로 진행된 투어일정을 마무리하고 계단(Staré zámecké schody)을 통해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관련 자료  ( 출 처 : 위키백과 )  


토마시 가리크 마사리크  < Tomáš Garrigue Masaryk  |  185037~ 19371014>

체코슬로바키아의 첫 번째 대통령이자 철학자, 교육학자, 언론인이었다. 프라하 대학 교수를 지냈으며, 국민당 당수가 되어 독립 운동 지도에 앞장서서 '체코슬로바키아 건국의 아버지', ‘철인 왕(Philosopher-King)’으로 불린다. 그는 보헤미아의 종교개혁가 얀 후스의 종교개혁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발견하였고 이를 건국이념으로 삼아 체코슬로바키아를 건국하였다. 체코에서 마사리크는 체코 민족과 국가의 방향성을 제시한 인물로 인식되고 있으며, 400여 년간 이어진 외세의 지배를 끝내고 국가를 세운 인물이자 미래를 제시하고 체코식 민주주의의 원형을 제시한 국부로 여겨지고 있다.


티탄  < Τιτάν >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거대하고 강력한 신의 종족으로 다음 세대인 올림포스 신들이 세상을 지배하기 전 이른바 '황금시대'를 다스렸다. 남성 티탄들을 티타네스, 여성 티탄들을 티타니데스라고 한다.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를 비롯한 문헌들에 처음 등장하는 12명의 티탄들은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아들 6명과 딸 6명인데 가이아의 부추김을 받아 막내아들 크로노스의 지도 아래 아버지 우라노스에 반기를 들고 전쟁을 일으켰으며 결국 우라노스를 몰아내고 세계를 지배했다. 그러나 크로노스의 아들 제우스가 역시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나자 많은 티탄들이 크로노스의 편에서 제우스와 싸웠으며 이 전쟁을 거인족의 전쟁 이라는 뜻의 티타노마키아라고 부른다. 제우스를 비롯한 올림푸스의 신들은 결국 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티탄족을 지하세계인 타르타로스에 감금하고 봉인해버렸다.


스테인드 글라스  /  색유리창  < stained glass >

금속산화물이나 안료를 이용하여 구운 색판 유리조각을 접합하여 만든 유리공예로 주로 유리창에 쓰인다. 이 색유리창은 7세기경 중동지역에서 비롯되었으며 11~12세기경 유럽의 기독교문화 지역에 들어와 교회건축의 필수 예술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고딕건축으로 인하여 벽이 좀 더 얇아지고 창문 크기가 커지면서 어두운 성당 내부에 색색의 빛을 비출 목적으로 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메토디우스  /  메토디오스   < Μεθόδιος  |  826~ 88546>

비잔티움 제국의 기독교 신학자이자 선교사이며 대모라바 왕국의 대주교였다. 동생인 선교사 키릴루스와 함께 슬라브족에 대한 선교 사업에 나서 슬라브족을 기독교화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하며, 특히 슬라브족의 선교를 위해 키릴 문자를 발명했다고 전해진다. 동생과 함께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에서 모두 성인으로 추대되었기 때문에 성 메토디우스라고도 한다. 동방 정교회에서의 축일은 214일이며, 로마 가톨릭교회에서의 축일은 511일이다. 성공회에서도 기존에 기념하던 성인들을 종교 개혁 이후에도 줄곧 기념하기 때문에, 성 키릴루스와 메토디우스 형제도 성인으로 인정받는다.


아르누보   /   유겐트스타일   < Art Nouveau  /  Jugendstil  /  Jugend-Style >

19세기 말 에서 20세기 초에 성행했던 유럽의 예술 사조이다. 최고조를 이룬 시기는 20세기 전후(1890-1905)이다. 아르 누보는 프랑스어로 "새로운 미술"을 뜻한다. 독일어권에서는 유겐트 잡지 이름을 따서 유겐트 양식(유겐트슈틸)이라고도 불린다. 19세기 아카데미 예술의 반작용으로 아르 누보는 자연물, 특히 꽃이나 식물 덩굴에서 따온 장식적인 곡선을 특징으로 삼고 있다. 아르 누보는 예술가가 건축에서 가구까지 삶의 예술에 관한 모든 부분에 대해 작업해야 한다라고 접근한다.


오벨리스크  /  방첨탑  < Obelisk  /  方尖塔 >

높고 좁으며 4개의 면을 지닌, 점점 가늘어지는 피라미드 모양의 꼭대기를 지닌 기념 건조물이다. 고대 방첨탑은 한 덩어리의 암석으로 만들어졌다. '스텔레'라는 말은 고전적인 방첨탑 형태로 새겨지지 않은 기념비에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오벨리스크에는 전승을 기념하거나 왕의 위업을 과시하는 문장이나 모양을 새겼는데, 태양 숭배 즉 태양신 라 혹은 호루스 와도 관계가 있다고 한다. 현존하는 최대의 것은, 이집트 제18왕조 하트셉수트 파라오의 카르나크 신전에 세운 것으로 높이 30m이다.


바실리카   < Basilica >

원래 고대 로마인들의 공공건물(고대 그리스의 경우에는 주로 법정을 칭함)을 칭하는 데 사용한 라틴어로 대개 고대 로마 마을의 포룸에 있었다. 고대 그리스 도시들의 경우, 공공 바실리카는 기원전 2세기에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바실리카는 또한 종교적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1915년 포르타 마조레 근처에서 1세기 것으로 인정되는 지하의 거대한 신피타고라스주의적 바실리카 유적지가 발견되었다. 바실리카 내부의 둥근 천장에 발라진 치장 벽토는 살아남아 있는데, 이것에 대한 해석은 서로 다른 의견이 많아 논쟁 중이다. 4세기 기독교 바실리카의 평면도는 세 개의 중랑(中廊)과 한 개의 후진(後陣)이 있는 구조인 이 신피타고라스주의적 바실리카의 평면도와 유사하다. 사람들을 많이 수용하기 위해서 장방형의 건물에 3~5개의 열주를 세우고 지붕을 씌워 실내공간이 넓다.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바실리카라는 용어는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고 규모가 크며 교황이 특별한 전례 의식을 거행하는 성당을 가리키는 것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따라서 현재 바실리카에는 두 가지 뜻이 있게 되었는데, 하나는 고대 건축의 문맥에서 공공건물을 가리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독교 건축의 문맥에서 대규모의 유서 깊은 성당을 가리키는 것이다.


후진  /  애프스  < 後陣  /  Apse >

교회(성당) 건축에서 가장 깊숙이 위치해 있는 부분으로서, 내진 뒤에, 주보랑에 둘러싸인 반원형 공간이다. 예배자나 순례객, 관광객이 성당의 중앙 현관으로 들어와 신랑을 통해 바로 보는 정면이 후진이므로, 주로 이곳에 제단이나 유물이 놓인다. 독일의 몇몇 로마네스크 교회에서는 서로 마주보는 양식으로(내진 뒤에, 배랑 뒤에) 후진을 두개 건축하는 모습도 보인다.


주랑현관   < portico >

건물 입구로 이어지는 현관 또는 건물에서 확대된 주랑을 일컬으며 통로 위로 지붕이 덮혀 있으며 기둥으로 지지하거나 벽이 둘러쳐 있다. 주랑 현관은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으로 나타났으며, 서방권 대부분을 비롯하여 여러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주랑 현관의 유명한 예로는 미국 의회 의사당의 동쪽 현관이나 로마 판테온의 현관, 런던 대학교의 현관을 들 수 있다. 주차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탈리아 볼로냐는 여러 주랑 현관으로 유명하다. 이 도시 중심부에는 주랑이 38곳이 있으며, 총 길이는 약 45km에 이른다. 세계에서 가장 긴 주랑은 볼로냐 시 가장자리에서 마돈나 디 산 루카 수도원에 이르는 주랑 현관으로, 길이는 18km이다.

팔라디오는 처음으로 신전 전면부를 세속 건물에 이용하였다. 영국에서는 신전 전면부 형태가 쓰인 햄프셔 더 바인(The Vyne)이 영국 농촌 가옥에 처음으로 이용한 주랑 현관이다. 그리스나 로마 신전의 주랑 현관에서 안쪽 부분을 프로나오스(pronaos)라고 하는데 주랑 열주 또는 벽에서 켈라(cella) 입구 사이의 공간이다. '프로나오스'란 그리스어로 '신전 앞'이라는 뜻이다. 라틴어로 프로나오스는 안티쿰(anticum) 또는 프로도무스(prodomus)라고도 한다. 로마 신전에서는 보통 프로나오스에 열주만 있고 벽이 없어서 개방되어 있으며, 프로나오스의 폭이 켈라만큼 긴 경우도 있다.


마리아 테레지아   < Maria Theresia  |  1717513~ 17801129>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유일한 여성 통치자이자,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군주였다. 그녀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보헤미아, 만토바, 밀라노, 갈리치아와 로도메리아,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와 파르마 등의 통치자였다. 결혼을 하면서 로렌 공작 부인이 되었으며, 후에 토스카나 대공비, 신성로마황후의 지위를 얻었다.

그녀는 태어나자마자, 1713년 국사조칙에 의해서 합스부르크 왕가의 상속녀로 공표되었으며, 카를 6세는 결국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었으므로, 그의 사후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장이 되었으며, 영토들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카를 6세 사후 프로이센과 바이에른, 프랑스, 작센에서는 그녀의 계승의 반발하였고, 그 결과 오스트리아 계승 전쟁이 발발하게 되지만, 프로이센에 슐레지엔을 내주는 대신 각 국으로부터 그녀의 승인을 인정받는다. 그녀는 후에 슐레지엔을 찾으려고, 7년 전쟁을 일으키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녀는 로트링겐의 프란츠 슈테판과 혼인하였는데, 16명의 자녀를 낳았다. 그녀의 자녀들 중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요제프 2세와 레오폴트 2세를 비롯하여서,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나폴리의 왕비 마리아 카롤리나, 파르마의 공비 마리아 아말리아 등이 있다. 그녀가 생전에 사용했던 칭호는 Königin(여왕)Kaiserin(황후)의 머리글자를 딴 ‘K.K’이다.


비밀국가경찰   < Geheime Staatspolizei >

통칭 게슈타포(Gestapo)는 나치 독일의 비밀 국가 경찰이다. 나치가 집권한 1933년 프로이센 주의 내무장관이던 헤르만 괴링이 프로이센 주 경찰의 정치 경찰을 모태로 창설했다. 그 후 괴링은 공군 창설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 1934년 하인리히 힘러와 친위대에 게슈타포를 넘겼다. 힘러와 그의 부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에 이르러 체제가 완성되었다.


프란츠 카프카   < Franz Kafka  |  188373~ 192463>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유대계 소설가이다. 현재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에서 유대인 부모의 장남으로 태어나 독일어를 쓰는 프라하 유대인 사회 속에서 성장했다. 1906년 법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 1907년 프라하의 보험회사에 취업했다. 그러나 그의 일생의 유일한 의미와 목표는 문학창작에 있었다. 1917년 결핵 진단을 받고 1922년 보험회사에서 퇴직, 1924년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결핵요양소 키얼링(Kierling)에서 사망하였다. 카프카는 사후 그의 모든 서류를 소각하기를 유언으로 남겼으나, 그의 친구 막스 브로트(Max Brod)가 카프카의 유작, 일기, 편지등을 출판하여 현대 문학사에 카프카의 이름을 남겼다.







 


#10. 국립 마리오네트 극장  ( National Marionette Theatre )


10 - 1. 기 본 정 보               _ 출 처 : Sygic


  명 칭

  Národní Divadlo Marionet

  완공(설립) 년도

  1991

  주 소 (위치)

  Žatecká 98/1, 110 00 Prague, Czech Republic

  유 형 (분류)

  인형 극장

  구역면적

  정원 275

  입장시간

  매일   PM 06:00 ~ AM 12:05

  시설물 이용시간

  2 시간

  입장료

  Box Office  매일   AM 10:00 ~ PM 08:00  -  Adults  :  Kč 590

  휴관일

  -

  이용문의

  +420 224 819 322  /  +420 724 367 126



  관련 링크  

■ 국립 마리오네트 극장

프라하에 본사를 둔 국립 마리오네트 극장의 상연목록은 다음과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을 포함하고 있다. 돈 조반니(Don Giovanni), 마술피리(The Magic Flute), 바로크 세계의 마법 극장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The Magic Theatre of the Baroque WorldOrfeo ed Euridice).

   National Marionette Theatre Czech Republic  



  관련 자료  ( 출 처 : 위키백과 )  


돈 조반니  < Don Giovanni , K. 527 >

로렌초 다 폰테의 대본으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1787년에 작곡한 오페라로, "돈 조반니"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그 해 1029일 프라하의 에스타테츠 극장에서 초연되었으며 2막으로 되어 있다.

돈 조반니는 여러 장르의 음악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널리 여겨지며, 특히 돈 후안의 전설을 토대로 만들어진 여러 오페라 작품 중에서는 비교를 넘어설 정도이다. 돈 조반니는 드라마 조코소 또는 해학곡에 속하는데, 완전히 희극적이거나, 완전히 비극적이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에 조지프 로지에 의해 영화용으로도 제작되었다.

돈 조반니 역으로 유명한 성악가에는 에치오 핀차, 체사레 시에피 등의 베이스와 사뮤엘 레미,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사이먼 킨리사이드, 토머스 햄프슨 등의 바리톤이 있다.


마술피리  /  마적   < Die Zauberflöte  /  魔笛 , K. 620 >

모차르트가 죽기 두 달 전에 완성한 징슈필로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받는 오페라 중 하나이다. 오페라의 대본인 리브레토는 연출가인 엠마누엘 쉬카네더가 썼다. 연출가이기도 하였던 쉬카네더는 핀란드의 동화를 바탕으로 환상적인 분위기의 징슈필 대본을 쓴 후 모차르트에게 작곡을 의뢰하였다. 오페라는 쉬카네더가 운영하던 비덴 극장에서 1791930일 초연되었다. 공연은 그 해에만 100 회가 넘게 상연되는 대성공을 거두었으나 모차르트는 그 해 12월 죽고 만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중 마지막으로 초연된 작품이며, 당시 오페라에 주로 쓰던 이탈리아어가 아니라 독일어로 되어 있다.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 Orfeo ed Euridice >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가 작곡한 3막의 오페라이다. 대본은 라니에리 데 칼자비지가 작성하였다. 이 작품은 오페라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힌다. 초연은 1762105, 프란시스 1세의 탄생 축연일에, 오스트리아 빈의 브르크 극장에서 막이 올려졌다. 이 작품은 빈 판본과 파리 판본, 베를리오즈 판본 등 3개의 판본이 있다.





10 - 2. 교 통 정 보               _ 출 처 : Google 지도



  현지 이동

  도보

  총 거 

  1.3 ㎞

  예상 소요시간

  약 15 분

  예상 통행료

  -

  예상 주유비

  -

  경 로

  프라하 성  ( Prague Castle )  ▶  국립 마리오네트 극장  ( National Marionette Theatre )




10 - 3. 국립 마리오네트 극장  ( National Marionette Theatre )



 




프라하에 온 이상 돈 조반니(Don Giovanni)’ 전통 인형극은 꼭 관람하고 떠나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국립 마리오네트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극장까지 1가 넘는 거리였지만 체코 화가 요제프 마네스(Josef Mánes, 1820~1871)’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마네수프 다리(Mánesův most)’에서 카렐교를 다시 사진으로 남길 수 있는 기회를 얻어서 좋았고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를 부리며 거리를 거닐어볼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최고의 오페라로 꼽히는 돈 조반니는 모차르트가 프라하를 위해 작곡하였고 1787년 세계 최초로 프라하 에스테이트 극장(Prague Estates Theatre)‘에서 이 공연을 직접 지휘하기도 했습니다. 프라하에서는 다수의 크고 작은 공연장에서 돈 조반니 마리오네트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있지만 오리지널 공연은 국립 마리오네트 극장의 인형극이 유일합니다. 이 극장은 다양한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유서 깊은 극장으로 돈 조반니, 마술피리등 유명 마리오네트 인형극을 상연하고 있는데 여기서 마리오네트(marionette)‘란 인형에 실을 매달아 조작하는 인형극을 말하며 전통의상을 입힌 커다란 인형이 등장하여 펼치는 오페라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무려 200년을 이어온 체코의 전통 인형극은 마리오네트 극장과 함께 2016년 유네스코 세계 무형 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극장 앞에 도착하니 게시된 자랑스러운 태극기와 한글홍보물이 보입니다. 프라하에도 한국국적을 가진 관광객들의 수가 적지 않은데 한글을 보기가 무척이나 어려워서 더 반갑게 느껴졌습니다. 오후 8시부터 이탈리아 원어로 약 2시간 정도 진행되는 인형극은 원작의 내용을 몰라 내용을 이해하기 쉽지는 않았지만 꽤나 수준 높은 인형극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공연 중에는 촬영이 금지되며 늦은 시간에 공연이 끝나기 때문에 무대인사가 끝나자마자 관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2막으로 구성된 오페라 돈 조반니는 전설 속에 등장하는 에스파냐의 호색 귀족 돈 조반니(돈 후안)’의 이야기로 탕아에다 무신론자 그리고 상하귀천에 얽매이지 않고 여성편력이 화려했던 돈 조반니는 기사장의 딸 돈나 안나에게 추근거리다가 그녀의 아버지인 기사장의 질책을 받고 결투 끝에 그를 찔러 죽이고 맙니다. 그 후에도 시골 처녀 체를리나를 유혹하는 등 못된 짓을 계속한 그는 묘지에서 기사장의 석상을 보고 만찬에 초대하였는데, 그날 밤 집으로 찾아온 석상을 보고도 뉘우치는 기색을 보이지 않자, 마침내 업화에 싸여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사회규범을 침해한 개인에 대한 응징, 즉 인과응보에 대한 좋은 예가 이 오페라의 주인공 돈 조반니인 것입니다.




  관련 자료  ( 출 처 : 위키백과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Wolfgang Amadeus Mozart  |  1756127~ 1791125>

오스트리아의 서양 고전 음악 작곡가이다. 궁정 음악가였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에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고, 그 후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아들로 잘 알려진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에게서 작곡법과 지휘를 배웠다. 그는 35년 생애 동안 수많은 교향곡, 오페라, 협주곡, 소나타를 작곡했으며,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오늘날 모차르트는 음악의 신동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널리 존경받고 있다. 







 


#11. 화약탑  ( Powder Tower )


11 - 1. 기 본 정 보               _ 출 처 : Sygic


  명 칭

  Prašná brána

  완공(설립) 년도

  1475

  주 소 (위치)

  Republic Square 5, 110 00 Prague 1, Czech Republic

  유 형 (분류)

  타워

  구역면적

  높이 65 m

  입장시간

  11~ 2AM 10:00 ~ PM 06:00  /  3, 10AM 10:00 ~ PM 08:00  /  4~ 9AM 10:00 ~ PM 10:00

  시설물 이용시간

  30

  입장료

  Adults  :  Kč 100  ( 타워의 매표소 )

  휴관일

  -

  이용문의

  +420 725 847 875



  관련 링크  

■ 프라하 공식 여행 포털 사이트

프라하 Language cz E-shopPrague.eu 공식 관광 포털

   Prašná brána #Prague.eu  




11 - 2. 교 통 정 보               _ 출 처 : Google 지도



  현지 이동

  도보

  총 거 

  800 m

  예상 소요시간

  약 10 분

  예상 통행료

  -

  예상 주유비

  -

  경 로

  국립 마리오네트 극장  ( National Marionette Theatre )  ▶  화약탑   ( Powder Tower )

 


11 - 3. 화약탑   ( Powder Tower )




 


 

 


중세시대부터 프라하의 주요 쇼핑거리였던 첼레트나 거리(Celetna Street)’를 따라가면 65m 높이의 화약탑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구시가를 둘러싸고 있던 성벽의 13개 관문 중 하나로 프라하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나뉘는 지점이며 왕과 여왕의 대관식 행렬이 시작됐던 화약탑은 1475년 건립을 시작해 1478년부터는 조각가 마테이 레이세크(Matěj Rejsek, 1445~1506)’에 의해 많은 조각 장식들이 추가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1488년 왕궁이 구시가지에서 프라하 성으로 이전되면서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다가 1592년에 다시 공사가 재개되었습니다.


오늘날의 화약탑은 18세기 초에 화약창고 겸 연구실로 쓰였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것이며 1757년 프러시아와의 전쟁으로 파손되었다가 1875년부터 1886년 사이에 건축가 요제프 모츠케르(Josef Mocker, 1835~1899)’에 의해 유사 고딕양식으로 복원되었습니다. 186개의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전망대에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전경을 모두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프라하의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체코 스트르셰도체스키주()에 있는 쿠트나호라(Kutna Hora)’로 이동하기에 앞서 한국산 식자재와 숙소에서 음용할 맥주를 구입하기 위해 마트에 들렀습니다. 특히 권위 있는 세계 맥주 품평회에서 흑맥주 부문 역대 최다 수상경력을 가진 코젤 다크(Kozel Dark)’의 깊은 풍미와 청량감에 감탄해서 즐겨 찾기 시작한 게 이때부터인데 불행히도 일본의 최대음료기업인 아사히 그룹 홀딩스(Asahi Group Holdings)’2017년에 인수한 유럽 맥주 브랜드에 포함된 것을 인지하고 있던 차에 불매운동의 일환으로 선호목록에서 삭제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하벨 시장(Havelské tržiště)‘은 아직 구입하지 못한 기념품을 구매하려는 의도로 일부러 찾은 곳인데 적절한 물품이 없어 헛걸음만 하고 돌아섰습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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